<특성화고등학교 바로 알기4> - 국가직공무원 합격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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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등학교 바로 알기4> - 국가직공무원 합격수기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7.04.2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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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가 주는 혜택으로 진로고민 해결(주한나 2015냔 우정직 합격)
▲ 서울 관악우체국 온라인팀 모습.(앞줄 맨 오른쪽이 필자 주한나 공무원)

저는 목포여상고 졸업생으로서 국가직공무원 우정직에 당당히 합격하여 현재는 서울 관악우체국에 재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주한나입니다. 막상 합격 수기를 쓰려고 하니 지난 고교생활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저는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슬레이트 지붕의 작은 집에서 6명의 가족이 어깨를 다닥다닥 붙인 채 잠들었고 씻는 것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샤워’라는 단어가 생소하기까지 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제가 유일하게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만큼 열심히 했기 때문에 학창시절 동안 우수한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집안 사정으로 중2 때 전학을 간 이후부터 꿋꿋하게 지켜왔던 주관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말수가 적고 혼자 있기를 좋아한 성격으로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사소한 오해가 생겼고 시간이 지날수록 골이 깊어져 저는 반에서 겉도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대인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자존감은 낮아만 갔고, 성적도 곤두박질 쳤습니다. 많이 떨어진 성적을 보면서 자괴감까지 느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의욕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다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핸드볼을 시작하면서 자존감도 회복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풀렸습니다. 그러나 한 번 방향을 잃어버린 공부하는 습관을 되찾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방황하던 사이 어느 덧 중3이 되어 진학을 결정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저는 이미 낮아진 성적과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일반고와 특성화고 사이에서 고민했습니다. 일반고로 진학한 두 살 터울 오빠의 대학입시 스트레스를 보며 대학 진학만이 공부의 목적일까라는 회의와 조금이라도 더 일찍 가계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겨 특성화고로의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는 일반고의 진학을 강요하셨습니다. 아직은 주변에서 특성화고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특성화고의 진학을 허락받기 위하여 목포여상고의 취업률과 우수취업사례들을 말씀드리면서 “국가에서 지원한 학비와 기숙사비 그리고 활성화 되어 있는 동아리와 방과 후 활동을 통해 저 자신만의 실력을 쌓을 수 있어요.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도록 노력할게요.”라고 약속을 하고 부모님으로부터 목포여자상업고등학교 입학을 어렵게 허락 받았습니다.

그 후 중3 겨울방학을 도서관에서 거의 지내다시피 하며 공부를 차근차근해갔습니다. 시간은 걸렸지만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친구들과의 격차를 좁힐 수 있었고 목포여상고 입학 후 첫 시험인 모의고사에서 반 1등이라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후 목포여상고 선생님들께서 저의 진로와 미래에 대해서 끊임없이 조언해주셨습니다. 또한 선생님의 추천으로 동아리부서인 금융연구부원으로 활동하면서 금융자격증 취득을 위해 노력하였고, 상업경진대회에도 출전하여 수상하는 등 금융인으로서의 전문성을 키워갔습니다. 자격증 취득부터 수상까지 무언가를 성취해낼 때마다 느끼는 자부심은 그 전에 제가 느꼈던 보람과는 달랐습니다.

처음엔 막연히 금융권으로의 취업을 희망하여 취업사관반에 들어갔습니다. 밤 9시까지 공부하며 취업을 위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은행, 증권사에 취업하는 것이 내 적성에 과연 맞는 것일까?’로 고민하게 되었는데 마침 담임선생님께서 공무원준비반에 들어가길 권유하셨습니다. 처음엔 대학교 졸업생도 합격하길 힘들다는 공무원시험이라 많이 고민했고 해낼 용기가 없었지만 특성화고 우수학생들끼리 경쟁한다는 좋은 제도라는 것과 학교에서 체계적인 프로그램으로 담당선생님들께서 책임지도 하신다는 말을 듣고 도전하기로 결심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공무원반을 들어갔을 때는 상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국가직 지역인재 9급 공무원 시험은 학교에서 5명을 추천하는데 공무원반에는 학업우수자가 10명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밤 9시까지 공부를 하면서 “내가 과연 최종 5명 안에 들 수 있을까?” 불안에 떨며 두려웠지만 일반 공무원 경쟁률에 비하면 누워서 떡먹기라 위안하고 죽기 살기로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 저는 공무원반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다고 자부합니다. 정규 수업 후 매일 밤 9시까지 국어, 한국사, 영어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새벽 2시까지 공부했습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교내 최종 선발에서 다행히도 아슬아슬하게 뽑혔습니다. 불합격한 친구의 눈물을 보며 그 친구의 몫까지 더 열심히 하여 꼭 합격하기로 다짐했습니다. 교내 선발시험을 치른 후 저의 하루는 너무도 빠르게 흘렀습니다. 돈을 주고 시간을 살 수만 있다면 사고 싶을 만큼 단 1초를 아쉬워하며 공부했습니다. 가끔 ‘불합격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일기장 가득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적으며 마음을 안정시켰습니다.

필기시험 날짜는 어김없이 다가와 긴장하며 시험을 치렀습니다. 시험을 보고 난 후 생각보다 실수를 많이 해서 불합격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숙사로 돌아와 많이 울었습니다. 그러나 필기 합격자 발표 날 제 수험번호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합격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 순간만은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행복했지만 면접이라는 또 하나의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면접을 처음 대비한 저였기에 준비하는 과정이 더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모교인 목포여상고의 여러 선생님께서 든든하게 그리고 치밀하게 정성을 다해 발 벗고 나서서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또한 합격한 언니들로부터 세밀한 도움을 받았으며 학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인터넷 강의 등으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1차 합격한 친구들과 함께 모의면접을 하면서 서로 면접관이 되어 조언해주며 면접을 대비했습니다. 마침내 면접시험 날 긴장한 탓에 열심히 준비했던 것만큼 실력이 나오지 않아 진땀을 뺐습니다. 그러나 최종합격자 발표 날 합격을 확인한 후 기뻐서 실컷 울었습니다. 지난날의 힘들었던 모습과 저를 묵묵히 믿어 주신 부모님, 그리고 불철주야 지도해 주신 목포여상고의 은사님들이 떠올라 쏟아지는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합격의 기쁨을 친구들과 선생님들, 가족들과 나누며 많은 축하도 받았습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제 합격에 기뻐했지만, 누구보다 기뻤던 것은 저 자신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명문 특성화고등학교인 제 모교 목포여자상업고등학교로 진학했던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합니다. 왜냐하면 목포여상고에서 훌륭하신 선생님들과 만났으며 또한 저에게 공무원이라는 꿈을 실현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특별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조금은 험난할 수도 있습니다만 비 온 뒤에 땅이 굳듯이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고 나면 더욱 강인해지는 법입니다. 저 또한 특성화고로의 진학을 꺼려하셨던 부모님을 설득하여 꾸준히 노력함으로써 제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꿈을 이루고 싶은 우리는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고, 원하는 인생을 살 권리가 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중3 여학생이 있다면 강력히 추천합니다. “명문 특성화고인 목포여상고에 과감히 진학하면 여러분 인생의 꿈을 좀 더 빨리 이룰 수 있다.”고 말입니다.

다시 한 번 이 지면을 빌어 목포여상고 박재석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선생님께 감사의 큰 절을 올립니다. 존경하는 목포여상고 은사님들! 조만간 빠른 시일 내에 학교로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모교인 목포여상고가 국가직공무원과 공기업과 금융직을 비롯한 좋은 취업을 더욱 많이 배출하는 산실이 되길 기원 드리며, 우정직 공무원으로서 국민에 대한 봉사정신과 국가를 위해 멸사봉공하는 애국의 길을 명심하겠습니다.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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