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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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과 진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7.04.26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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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준(동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복면속에 감추어진 얼굴이 드러날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한다. 하지만 감추어진 얼굴이 드러나는 일이 언제나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때로 감추어졌던 얼굴은 우리를 당황하게도 하고, 분노하게도 한다.  

‘슈바이처’, 그는 아주 오랫동안 우리에게 휴머니즘을 대변하는 인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과연 그게 얼마만큼 진실에 가까운 걸까?  아프리카 역사와 신학을 전공하고 윤리학 교수로 일하고 있는 ‘닐스 올레 외르만’은 「슈바이처 평전」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슈바이처에 대한 가면을 과감히 벗겨낸다. 그의 슈바이처 평전은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원시림의 성자(聖者)’라 불리는 루트비히 필립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 칸트를 연구한 철학자, 생명 존중 사상을 주창한 인본주의자, 아프리카 흑인의 고난을 덜어준 의사, 탁월한 오르간 연주자이자 바흐의 전기를 쓴 문화철학자, 한마디로 팔방미인형 천재의 전형이다. 특히 나이 서른에 시작한 의학 공부를 마치고 의사로서 헌신한 아프리카 랑바레네에서의 인도주의적 의료 활동은 그에게 1952년 노벨평화상 영예를 안겨줬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이 위대한 사람이 바로 그다.

‘닐스 올레 외르만’에 의하면 ‘밀림의 성자’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자기 꾸미기에 탁월한 연출가였다. 아프리카의 수백 개 병원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슈바이처의 원시림 병원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그토록 유명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슈바이처가 그 바쁜 진료 중에도 수만 통의 편지를 발송했고, 그 수신자가 아인슈타인에서부터 흐루시초프를 거쳐 존 F 케네디에 이르기까지 다국적 권력자였던 건 왜일까?

슈바이처는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정치적 인간’이었는데, 이 핵심 사실이 지금까지 대부분 간과돼 왔다. 그는 의사로서 돌본 흑인들을 친구로 대하기보다 측은히 여겨 의술을 베풀어야 할 하급 인종으로 여겼다. 유럽인으로서 그는 유색인에게 시혜를 준다는 의식이 있었다. 그의 인도주의적 선행에는 식민주의가 악이라는 판단이 없었다.

슈바이처는 자서전 『나의 생애와 사상』에서 삶의 위대한 순간과 결정을 언급하면서 그 날짜까지 자세히 기록했다. 속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자서전들이 그렇듯 자신의 인생을 고상하게 꾸미려는 의도가 짙다. 기차의 3등석을 타고 해진 옷을 입은 채 점잔을 떠는 슈바이처의 모습은 연출한 것이라는 게 뻔하다 해도 매력 있는 노장으로 보인다. 그만큼 그는 타고난 전략가였다.

그렇다고 슈바이처가 위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건 아니다. 8학기가 채 안 되는 기간에 신학·철학·음악이론을 병행해 공부한 걸 보면 분명한 목표 의식을 세우고 효율적으로 집중해 성공에 이르는 낙관주의자의 면모가 강하다.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과 함께 지름길을 찾는 본능도 놀랍다. 2차 세계대전 같은 파괴적인 전쟁 이후 많은 이들이 새로운 지향점과 본질을 찾아 나섰을 때 이런 욕구를 반영하는 이상적인 영사막 구실을 한 대형(大兄)의 풍모도 보인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이제까지 알아왔던, 존경할만한 ‘그’는 아닌 듯하다.

‘슈바이처 신화’는 우리에게 역사를 엄정하게 되새김질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한국 현대사에 명멸한 수많은 위인과 신화를 돌아볼 때, 이 새로운 슈바이처 전기는 하나의 시금석이다. 이미 출간된 전기들을 속속들이 파헤쳐 다시 쓰는 한국 인물사가 얼마나 많아져야 할까, 헤아려보게 해준다.  더욱이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으로 드러난 전(前) 대통령의 또 다른 얼굴을 보게 된 2017년의 우리의 현실은 ‘가면’과 ‘진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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