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 30주년을 맞이하는 작은 촛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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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30주년을 맞이하는 작은 촛불 이야기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7.06.13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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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옥 목포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
▲ 임창옥 목포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아울러 올해 2017년 6월은 6월 민주 항쟁 30주년을 맞이하는 의미 있는 달이다.

6·10 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26일 유신의 심장인 박정희씨의 죽음으로 봇물처럼 터져 나온 민주화의 열망을 짓밟고, 특히 80년 5월 광주, 전남의 피를 먹고 등장한 전두환정권의 군사독재에 대항하여 1987년에 일어난 전국적 규모의 민주화 항쟁이었다.

1987년 6월 10일부터 29일 사이 연인원 300만 ~ 500만의 국민이 참여하고 진압 경찰은 연인원 6만이 넘은 대규모의 장정이었다.

87년 6월 내내 청년·학생들은 자욱한 최루탄 안개 속을 질주했으며 여성들은 손수건을 꺼내들고, 보도블록을 깨고 치약을 짜 나누었다. 교회와 사찰은 종을 울렸으며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리고 어머니들은 또 다른 아들들인 전경들에게 평화의 꽃을 달아주었다.

80년 5월의 광주같이 고립되지 않고 광주와 부산이 함께하고 제주에서 서울까지, ‘동장에서 대통령까지 우리 손으로’ 라는 슬로건으로 민주화의 과정인 ‘직선제 개헌 쟁취’로 한 마음을 이루었다. ‘백골단’으로 이름 붙여진 사복 전경과 살인적인 최루탄인 사과탄, 지랄탄, 페퍼포그를 뚫고서.....
지면 관계상 간략하게 6·10 민주항쟁 전후를 중요 사항별로 함께 봤으면 한다.

△1985년 2월 12일 12대국회 신한민주당 제1야당으로 자리 함.
△1985년 민통련, 민청련 결성.
△국민들의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요구와 민주화에 대한 기대 상승.
△1986년 2월 12일 민추협과 신민당 대통령 직선제 개헌 추진 천만 서명운동 현판식. (전국광역도시)
△1986년 5?3 인천사태.
△1986년 부천 성고문 사건.
△1986년 10월 건국대학교 사태.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남영동 대공분실)
△1987년 2월 7일 “박종철 추모대회”
△1987년 3월 3일 “박종철 49재 고문추방 국민 대행진”
△1987년 4월 13일 “호헌조치” <체육관 대통령 간선제> 발표.
△1987년 4월 ~ 5월 ‘천주교 광주대교구 사제단을 시작으로 목회자, 교수 ’4?13 호헌철폐‘ 단식 농성.
△1987년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 최루탄 피격.
△1987년 6월 10일 민정당 전당대회 (잠실체육관)
 “박종철 고문 살인 은폐 조작 규탄 및 호헌철폐 범국민 대회” (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
△1987년 6월 10일 ~ 15일 명동성당 대투쟁
△1987년 6월 18일 ‘최루탄 추방 범국민 대회’
△1987년 6월 26일 “국민 평화 대행진”
△1987년 6월 29일 ‘6·29선언’ 직선제 개헌안 수용 등 국민적 요구 8개항 수용.

6월 민주항쟁은 돌발적으로 우연히 터져 나온 항쟁이 아니다.

5·16 군사 쿠데타와 유신체제의 18년 독재 정권을 종식시키고자 했던 국민적 열망이 ‘5월 광주’로 대변되는 폭압에 질식한 상황에서도 국민이 서서히 전열을 정비해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 주권을 쟁취했던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일지에 보다시피 79년 12·12 사태로 군권을 찬탈한 신군부 세력이 80년 5월 17일 쿠데타로 집권하여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반대 세력을 축출하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통치행위를 자행했다.

그러나 국민은 야권을 재편하며 민중, 민주세력을 결집시켜 나갔다. 이에 위기를 느낀 전두환정권은 5·3인천사태, 건국대 사태 등을 도발하여 민중, 민주세력을 과격하고 불순한 집단으로 몰아가고 그 무리한 과정에 ‘부천 성고문 사건’ 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터진다.

그럼에도 87년 2월 7일 ‘박종철 추모대회’, 3월3일 ‘박종철 49재 고문추방 국민 대행진’을 막아냈다는 전두환정권의 오만함은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잠실체육관에서 반라(半裸)의 치어리더들이 화려한 춤을 추고, 내노라하는 가수들이 노태우의 애창곡 ‘베사메무초’를 열창하는 가운데 전두환은 노태우의 손을 번쩍들어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인준해 주었다.

그렇지만 재야, 야당, 종교인, 학계, 학생, 청년 등 모든 국민이 영·호남, 제주, 대전, 서울을 가리지 않고 떨쳐 일어나 ‘이한열’ 열사의 희생 등을 치루고 이루어 낸 민주항쟁인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거치고 노동자 대투쟁, 최루탄과 백골단을 대신한 물대포에 백남기 농민의 희생을 딛고 연인원 1700만의 국민이 ’이것이 나라냐?‘ 하며 ’정권 교체‘를 외치며 촛불을 들었다.

어떻게 보면 30년만에 비슷한 상황의 정권교체를 국민 스스로 이루어냈다.

80년 5월을 거치며 ‘민중’이라는 용어가 친숙하게 쓰이고 87년 6월을 통과하며 ‘시민’이라는 용어가 일상화 되었듯이 이제 2017년을 지내며 다시 ‘국민’이라는 용어가 편하게 들린다.

고비 고비 마다 자랑스러운 역사를 스스로 이루어내는 우리 공동체가 민중, 시민, 국민이라고 정체화 되는 우리의 모습을 잘 살려 분단을 극복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는 공동체를 이루어 내 지구 공동체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공동체가 되길 6월 항쟁 30주년을 맞이하여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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