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읽기 한 줄의 시
상태바
목포 읽기 한 줄의 시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7.07.25 16: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모를 알은척 안 했다 - 김경애
▲ 김경애 시인.

고모를 알은척 안 했다

김경애


간판도 없는 서산동 할매집,
미자 언니는 비밀 이야기를 풀어놓듯
소문내지 말라고 당부를 하며 나를 그곳에 데려갔다.
아는 사람만 찾아온다는 보리마당
식당이라고 하기에는 옹색한 지붕이 파란 집.
비탈진 텃밭에는 봄동이 꽃을 피웠고
빨랫줄에 걸린 서대 몇 마리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기별 없이 찾아간 고향집 풍경처럼
동네 사람들은 대낮부터 술에 취해 있었다.
작은방에서 서대찜을 기다리는 동안
압력밥솥이 요란스럽게 칙칙거렸다.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보해소주, 크라운맥주, OB맥주…….
때 묻은 작은 진열장에는
한라산, 88디럭스, 라일락, 엑스포, 시나브로…….
창고 같은 방안은 보물들이 꽉 찬 흑백필름 같았다.
막걸리 몇 잔 들어가니 목포 앞바다가 출렁거렸다.
옆방에서 갑자기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돌아다보니 얼핏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20여 년 전, 타향에서 적금 들어
엄마에게 맡긴 내 돈 오백만원 떼어먹고 소식 없던
아직도 춤추러 다닌다는 고모였다.
끝내, 고모를 알은척 안 했다.
 

* 첫 시집,『가족사진』, 천년의 시작, 2015 수록.
 『2015년 오늘의 좋은시』, 푸른사상, 시향, 선정.

<김경애 약력>

2011년 《문학의식》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가족사진』 (2015,천년의 시작)이 있음. 
광주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졸업.
목포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목포문학관 어린이문학교실, 독서토론논술 학원.
광주전남작가회의, 목포詩문학회 회원.

 

<시작 노트>

 기억은 여러 형태로 각인된다. 쉽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나를 늘 깨어있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기억의 공간 속에 묻혀 알 수 없는 이유로 헤맬 때도 많다. 
 
시라는 장르는 꼭 사실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상상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묻는다. 시 속의 고모가 실존인물인지, 아니면 가상의 인물인지 궁금해 한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실존인물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 속에서 말하고 있는 ‘고모’는 내 안에도 있고 당신의 마음에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이야기인 듯 아닌 듯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읽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디에 머무르든 그건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간판도 없는 할매집이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다양한 담배의 추억이나 아니면 먼 타향에서 매달 적금을 부어 고향으로 보내는 앳된 처녀거나 또는 아직도 춤추러 다니는 고모이거나, 다 말할 수는 없지만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들. 가장 갖고 싶은 것들은 가 닿을 수 없는 것들이라지 않던가? 아마 시도 그러하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