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전국고교만화선수권대회 1위 전남예술고 영상미술과 학생들 남수빈,박송,정유림(이하 2년)윤이나, 이진하(이하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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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전국고교만화선수권대회 1위 전남예술고 영상미술과 학생들 남수빈,박송,정유림(이하 2년)윤이나, 이진하(이하 1년)
  • 이효빈
  • 승인 2017.08.1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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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간 매일 학교에 모여 8시간 연습, 호흡 맞춘 결과물
▲ 제26회 일본전국고교만화선수권대회에서 시상식에서 1위 상금(무려 30만엔! N분의 1로 배분한다고 학생들은 즐거워했다!)을 시상 받는 전남예술고 학생들. 왼쪽부터 이진하, 윤이나, 남수빈, 정유림, 박송학생.

[목포시민신문=이효빈기자]‘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기이한 일을 기적이라고 한다. 기적은 경험된 자에게 기적이다. 기적을 경험하는 자는 기적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이다.’ 사랑의 생애(이승우 작가)의 한 구절이다. 지난 6일 전남 무안에 소재한 전남예술고등학교(교장 위홍주) 영상미술과 학생들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최대 규모의 전국고교만화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지방의 학생들이 만화의 본고장인 일본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대견한 일에 대해 혹자들은 기적이 일어났다는 표현을 한다. 하지만 일본현지에서 그려낸 작품들과 이를 위한 학생들의 노력을 들었다면 대회에 같이 참가한 한 일본학생의 “한국팀이 상을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멋있었다”는 극찬에 격한 동의를 표할 것이다.

일본만화의 중심지인 고치현(俔)에서 열린 제26회 전국고등학교만화선수권 대회에서 당당히 1위를 손에 넣은 전남예술고 영상미술과 팀5명 중 남수빈(2),박송(2),윤이나(1)학생을 만나 궁금한 뒷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 결승전의 '1,2,3' 작품.

학생들은 대회가 방학 끝 무렵에 있었기에 대회준비를 위해 고스란히 방학 대부분을 학교에 나와 하루 최소 8시간이상을 대회준비에 매진했다. 영상미술과 전공 선생님인 송재호 선생님과 5명(남수빈, 박송, 정유림(이하 2학년), 윤이나, 이진하(이하 1학년)학생으로 구성됨)의 학생들은 대회에서 미리 던져준 5개의 주제에 맞춰 각자 주제를 해석해오며 더 나은 결과물을 매일 만들어냈다. “방학동안 나와서 연습하지 않았다면 대회에 1작품당 주어진 5시간 30분의 시간에 맞춰 그려내기 힘들었을거에요!”
팀의 리더였던 수빈학생의 말이다. 3주 동안의 많은 연습량 덕분에 대회를 치루기까지 송학생과 이나학생의 배탈, 그림 용지의 부족등 수많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있었다고 학생들 모두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 제26회 일본만화전국고교선수권 대회에 전남예술고 학생들이 프로필로 낸 작품.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특징을 캐릭터화해 희화화 시킨 점이 눈에 띈다.

대회의 5개 주제 중 학생들이 가장 그려내기 힘들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극찬을 받았던 ‘유신(維新)’이었다. 유신은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을 염두 해두고 던진 주제였지만 우리나라의 유신은 19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이 10월 유신과 유신헌법을 통해 독재체제와 장기집권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일본과의 온도차가 달라 만화로 풀어내기 어려웠단다. 하지만 진하학생의 아이디어로 벚꽃나무에서 벚꽃 잎이 흩날리며 청와대와 2016년 겨울동안 광화문 앞에서 진행된 대한민국 국민들의 촛불시위를 유신으로 표현했다. 그림 한 켠엔 ‘2017년 벚꽃이 흩날리는 날 촛불과 함께 한국에도 진짜 유신이 왔다’를 적어냈다. 현지 사람들의 반응은 결승전 그림인 ‘1,2,3’을 주제로 한 개그코드가 가미된 그림이 호응이 높았지만, ‘유신’ 그림에 대한 설명 후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건 ‘유신’그림이었다고 한다. 심사위원 중 한명은 “이 그림이 일본 만화에 유신을 일으켰다”라고까지 칭송했으니 말이다.

▲ 유신’에 관한 주제를 가지고 벚꽃나무에서 벚꽃 잎이 흩날리며 청와대와 2016년 겨울동안 광화문 앞에서 진행된 대한민국 국민들의 촛불시위를 유신으로 표현했다. 그림 한 켠엔 ‘2017년 벚꽃이 흩날리는 날 촛불과 함께 한국에도 진짜 유신이 왔다’를 적어냈다. 심사위원들이 “일본 만화에 유신을 일으킨 작품이다”라고 극찬한 작품.

대회당시 일본팀들은 보드위에 아크릴물감으로 바로 그린 반면, 한국 팀만 유일하게 수채화로 준비할 종이조차 대회에서 사야할 환경이었다. 박송학생의 한국에서 혹시 몰라 챙겨온 연습용 스케치북이 아니었다면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했을 거란다.

“연습할 때 제일 그리기 힘들었던 ‘유신’은 송이의 스케치북을 뜯어 한 장씩 서로 맞춰가며 붙여 완성했지만 마지막에 종이가 안 맞았어요. 멘탈이 나갈 뻔 했지만 서로 다독여주며 다시 완성했죠!” 수빈학생의 아찔했던 상황을 웃음으로 설명한 대회 뒷이야기이다. 대회 중엔 엑소와 여자친구, 위너원 등 K-pop을 틀어 흥얼거리며 즐거운 분위기로 대회에 임했다고 한다. 

힘든 고비들을 긍정적인 에너지와 유쾌함으로 이겨낸 학생들은 수상 가능성은 예상했지만 1위를 할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일본 특유의 감성도 감성이거니와 언어에 대한 소통부재, 워낙 큰대회이기 때문에 타국 팀인 한국 팀에 우승을 줄까하는 우려 등이 마음을 무겁게 해서이다.

1위에 대한 예상은 못했기에 마지막에 호명되는 1위의 순간에도 전남예술고 학생들은 자포자기인 상태였다. 특히, 이나학생은 상을 받으러 올라온 순간에도 우승했다는 걸 몰랐다고 한다.

일본에서 가장 큰 전국대회인데다가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대회 내내 참관하며 잠재력 있는 학생들을 출판사 및 작가휘하로 캐스팅하는 기회를 주는 발판의 장이였기 때문이다. 특히 시상식전과 대회 중간 중간 틈틈이 캐스팅이 즉석에서 진행 되는 모습은 외국팀인 우리나라 학생들이 가장 부러워한 장면이였다. 더군다나 이번 열린 고치현은 ‘날아라 호빵맨’의 작가 야나세 다카시(1919~2013)이 태어난 고향이기도 하며 일본 만화의 미래인 학생들이 반드시 참가하는 대회였다.

캐스팅이 되면 비록 지금은 입시미술로 인해 우리나라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 사이에 실력 차이가 나겠지만 불과 몇 년만 지나면 출판사와 작가의 지도와 가르침 아래 넓은 기회와 엄청난 성장이 예상된다는 이유이다. 아직 우리나라엔 이러한 시스템이 없는 것이 일본 고교생들이 부러운 더 큰 이유이기도 하다.

▲ 전남예술고 영상미술과 교실에서 기쁨의 브이(V)를 하는 (사진 左부터) 남수빈 학생, 양재호 영상미술과 선생님, 윤이나 학생, 박송 학생. 뒤로는 학생들이 대회를 준비하며 그린 그림들이 보인다.

학생들의 뛰어난 실력을 보고 캐스팅하고 싶지만 한국은 너무 멀어서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캐스팅관계자들의 말은 학생들을 울컥하게 했다.

만화의 본고장에서 본국의 촉망 받는 학생들을 뛰어넘어 오로지 실력으로 인정받은 사실은 훗날 우리나라 만화의 큰 자산이다.

대견한 일을 해낸 학생들은 한국에 귀국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이젠 학교공부와 입시미술에 매진해야만 한다고 했다. 만화의 본고장에서 인정받은 기쁨도 크지만 입시에 도움이 될 것이기에 이 기쁨도 크다고 씁쓸해 했다. 학생들에겐 입시미술을 뿌리칠 만큼 일본 캐스팅 제도 같은 견고한 시스템도 한국에 없을뿐더러 만화시장도 굉장히 좁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알아본 학생들의 잠재력과 실력을 더 성장시켜 우리나라 만화의 든든한 기둥으로 만드는 것은 이제 나머지 어른들의 몫임에 분명하다.
이효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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