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춤꾼 이삼헌의 ‘바람의 춤꾼’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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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춤꾼 이삼헌의 ‘바람의 춤꾼’을 보고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7.08.3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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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희 전 정명여고 교사
 

극단 갯돌이 주관한, 17회 세계마당 페스티벌이 8월 3일부터 6일까지 있었다.

일본의 판토마임을 비롯해, 캐나다의 저글링, 미국의 마임, 안데스와 아프리카의 전통음악, 몽골과 베트남의 민속 문화 등 다양한 공연이 진행되었다.

우리 것으로는 마당극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 행사가 진행되었다. 무엇보다도 엄청난 파워를 보여 준 개막놀이 ‘옥단아, 놀자’와 ‘만인계 놀이’가 페스티벌을 빛냈다. 동네 주민들 중에는 직접적으로 놀이에 참여하고 있어서, 신명으로 가득한 낯익은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길거리마다 사람들로 가득 찼고, 풍물과 불꽃놀이는 밤하늘을 장악했다. 원도심의 모든 길거리와 광장은 놀이의 마당이었다. 

길거리에는 지역민들도 많았지만 가족 단위의 외부 사람들과 외국인들도 생각보다 많았다. 유난히 무더운 밤인데도 사람들은 거리거리를 가득 채웠다. 거리에는 나이와 취향에 맞는 프로그램이 많아 이를 즐기고, 늦은 밤까지도 어린 아이들은 비눗방울 놀이에 빠져 있고, 소년 소녀들은 길거리에 덜퍼덕 앉아,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즐기고 흥을 냈다.   

목포가 늘 이날 같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둘째 날, 갯돌이 초청한 독립영화 '바람의 춤꾼'을 본 것을 잊을 수 없다.

'바람의 춤꾼'은 거리의 춤꾼 ‘이삼헌’의 삶을 독립영화로 만든 것이다. 한 개인의 삶과 활동을 그려냈는데도 1시간 20분이 쉬이 가버렸다. 발레리나를 꿈꾸던 그는 광주의 5.18을 만나면서 삶이 달라졌다. 그의 공황장애로 생긴 고소 공포증조차도 비뚤어진 역사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이리라!

그는 억울한 죽음에게 달려갔다. 미군 장갑차에 치어 숨진 미선이와 효순이를 찾아갔다. 쌍용 자동차 해고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을 어루만졌다. 세월호의 비극성과 한을 온몸으로 보여 줬다. 김남기 어른의 억울한 죽음에도 그가 있었다. 길거리에서 풀어내는 그의 씻김굿은 애절하고 처연했다. 그의 얼굴은 죽은 자에 대한, 살아있는 자로서의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의 춤은 너무 분해서 거리에 나가 뒹굴며 울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대신했다.

어느 순간부터 객석에서 훌쩍훌쩍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 역시 처음에는 소리 없이 울었다. 억울한 죽음 자체가 힘들어서 울었다. 무지해서, 무력해서, 선량한 사람들을 지키지 못하고 속수무책이어서. 회한의 울음을 울 때는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어 엉엉 울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를 위해 우는 나를 발견했다. 분노에서 시작한 울음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뭔가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울음으로 변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가 나를 치유한 것이다. 영상 사이사이 그가 부르는 장사익의 먼산조차도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쓸쓸하게 만들지만, 그 쓸쓸함조차 위로가 되었다.  그가, 고마웠다!

엔딩 후 이삼헌씨와 최상진 감독, 제작자 박미경씨가 무대에 나타났다. 15년 전쯤부터 길거리에서 춤추는 그를 담기 시작한 최상진 감독, 대한민국의 슬픈 현대사를 춤으로 보여준 이삼헌씨를 우리가 볼 수 있도록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한 박미경씨. 참 감사하다.

이분들을 보면서 소원이 생겼다. 독립영화 '바람의 춤꾼'을 ‘택시 운전사’처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꿈이다. 적어도 천만 명이 이삼헌의 춤으로 억울함을 풀고 치유되었으면 해서였다. 이 영화의 소제목은 ‘대한민국 국민들께 바치는 헌무(獻舞)’이기도 하다.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180만 정도에서 관객을 불러들이고 종영했을 때, 크라우드 펀딩으로 만들어진 독립영화여서 그런 것은 아니었는가 싶어서 아쉬웠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 ‘택시 운전사’를 봤다. 그런데 옆에 앉아 있던 예닐곱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좌석에서 내려와 땅바닥에 앉아 좌석을 주먹으로 치면서 울더란다.

“어떻게 사람들을 죽일 수 있어! 어떻게!”라며 계속 울더란다.

살아있는 우리 모두는 씻김이 필요하다. 김삼헌의 씻김굿이 필요하다. 은폐된 현실을 드러내고, 신명으로 우리 모두가 되살아나는 시간을 그를 통해 가지는 일이 소중하다.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온 민중의 삶이 거룩한 삶임을 천명하는 통과의례가 절실하다.

이 모든 생각은 갯돌이 있어서 가능했다. 갯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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