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동(법무사) 산방야화
상태바
■박영동(법무사) 산방야화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7.09.06 11: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연 2 (천생연분)
▲ 박영동 법무사.

바람이 불면 비탈에 선 가지가 흔들리고, 하늘에 떠가는 구름은 온갖 형상을 그리며 무심코 흐르다 밀어 당기는 몸부림으로 정이 깊어지면 때로는 비구름으로 변하여 유영하다 한꺼번에 쏟아지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솜털처럼 가벼이 나르며 맺었던 사연을 순식간에 접고, 땅에서는 흙탕물로 뒤엉켜 수목들을 촉촉하게 적시기도 하고 이름 없는 계곡을 뒤흔들어 놓기도 합니다.

그사이 백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듯 보이던 언덕과 바위뿐만 아니라 사람이 애써 쌓은 구조물에도 불가항력의 마력을 발산하여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지상에 펼쳐진 만물의 인과응보가 비단 바람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셀 수 없이 많은 요인들로 선과 악의 업보를 교차하며 제 각각의 존재 가치를 유지해가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사람이나 짐승 또는 대자연의 품속에 상존하는 삼라만상의 물질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질긴 끈이 마치 누에가 뿜어내는 비단실과 같이 복잡다단하게 얽혀 쉬지 않는 순환의 작용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밤하늘에 수없이 빛나는 별들이 스스로의 길과 자리를 차지하고 하나의 점으로 빛나듯이, 지상에서도 마찬가지 온갖 모습으로 비추어 보이는 수많은 점 중 딱 하나가 바로 나의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마치 깊고 넓은 업보의 바다를 일엽편주와 같이 떠가는 것으로 이왕이면 항상 좋은 마음과 맑은 뜻으로 바라다 보이는 모든 것을 극진하게 대해야 좋은 인연이 차곡차곡 쌓여 갈 것입니다.

날이 가면 달이가고 계절이 가면 해가 바뀌면서, 세월 또한 무상하게 흘러가 버릴 것인데, 그사이 인생의 힘든 오르막길이 있었다면 언젠가는 내리막이 있기도 할 것입니다.

비바람 폭풍이 몰아치는 격동의 밤이 가고 나면 햇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고요한 아침이 다가서기도 하며, 보고 싶은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다 세월의 아픔 끝자락에 가슴 떨리는 해후를 맞기도 하고, 꿈같이 행복하던 순간이 지나면 가슴을 저미는 슬픈 이별이 우리 앞에 펼쳐지기도 할 것입니다.

희로애락 애오욕의 사단칠정이 부리는 만 가지 변화는 어느 하나로 볼 수도 없거니와,  또 한순간도 아니어서 끊임없이 돌아가는 자연의 이법으로 발현되며 인간사의 끝없는 공전이 될 것입니다.

때로 아프거나 슬프고 외롭거나 괴롭다 할지라도 영원한 시련인양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가오는 행복한 순간을 위하여 미리서 받아내는 아픔이라면 조금은 편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이생에 옷깃만 스쳐도 전에 300생의 인연이 있고, 서로 앉아 말만 주고받아도 500생, 같은 솥의 밥을 먹으면 700생, 같은 피를 나누면 900생, 부부의 연은 1,000생의 인연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이미 결혼한 부부는 1,000생의 업보를 부단히 쌓아 현세에서의 지극한 만남이 이루어진 것으로 흔히 말하는 천생연분이라 할 것입니다.

내가 깊은 잠에 취해 코골이를 하는 것을 배우자가 듣지 못하고 이빨을 부딪는 소리를 내가 듣지 못하여 자장가로 삼는다면 그야말로 천생연분 입니다.

예전에 천연두라는 돌림병으로 얼굴에 흉터가 많은 남자와 혼인의 서약을 맺어 살아가는 여인은 아팠던 상처의 남은 공간마다 정이 가득가득 담겨 있어 더욱 좋다고 하였다는데 그 또한 딱 들어 맞는 천생의 연분입니다.

기구한 운명으로 두 사람의 장님이 만나 살아가는 동안에 상대방으로부터 느끼는 체온과 인간의 향기가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듯하다고 느끼면 매일 같이 황홀경 속에서 극도의 행복을 만끽 할 것입니다.

그러한 순간에도 두 사람의 한쪽 가슴에는 만약에 정상적인 시력을 회복하여 서로를 위하여 보다 더
성심껏 잘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진실이 하늘에 통하였는지 어느 날 ‘성자의 샘’이라는 영험한 약수로 눈을 깨끗이 씻으면 잃었던 광명을 찾을 수 있게 된다는 희망을 안고, 만난을 헤치고 성자의 샘에 도착하여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최고의 행복을 꿈꾸며 기적처럼 성자의 샘물로 눈을 뜨게 됩니다.

드디어 서로의 앞에 나타난 사람들은 꿈속에서 그리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초라하고 지저분한 형상의 상대방에 대하여 그리던 행복이 아닌 한없는 실망과 함께 회환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을 치는 것입니다.

전생에 주어진 천생의 연분에다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욕망에 의하여 공들였던 안분지족의 탑은 더 이상의 효력이 없는 허공 속으로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