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동의 산방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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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의 산방야화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7.10.1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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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의 명절
▲ 박영동 법무사.

올해는 이상기후로 인하여 지구촌 전체가 때 아닌 몸살을 앓았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상상을 초월한 허리케인이 두 차례나 상륙하여 인간이 거대한 자연 앞에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 나사에서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앞으로 태양의 흑점수가 점진적으로 늘어나면서 전체적인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기상 이변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 예측하였다.

멕시코를 비롯한 환태평양 화산대에 속하거나 설사 화산대에 속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진의 강도가 심해지고 횟수가 잦아지는 것은 그만큼 재난의 위험이 가중되고 있다는 징조일 것이다.

올해는 유난히도 가물어 과일을 비롯한 농사가 참으로 힘들었으며 추석명절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어수선한 국제정세와 평년을 밑도는 수확 등으로 차례 상에 올릴 제물들이 그다지 풍족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문득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까마득하게 기억을 하는데 자세한 연유는 모르지만 작은 누나와 함께 외할머니 댁에서 추석을 맞이한 적이 있었다. 

당시 외할머니는 약 75세 정도로 상당히 연로하셨고 자손들이 많지 않아서 차례를 지내기 위하여 준비한 음식이 너무나 적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로 불안하게 느꼈던 기억이 난다.

외할머니가 거주하시는 마을은 영암군 미암면 약 25가구 정도가 되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동네의 관습상 명절에는 의례적으로 집집마다 서로 온갖 음식을 정성껏 장만하여 한상을 가득 차려 집집마다 돌리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었다.

외할머니께서도 보답하는 뜻으로 스스로 준비하신 음식으로 정성껏 상을 차려 집집마다 인사 상을 보내곤 하셨는데, 어린 마음에 외할머니가 준비하신 음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에 가깝고 그전에 음식이 바닥이 나서 우리가 먹을 음식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외할머니는 신의 손이신지 온 동네 인사 상을 한집도 빠지지 않고 차질 없이 모두 만들어 보내시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여 이러한 일이 가능하였을까?

집집마다 보내온 인사 상에서 그 중 일부만을 맛보고 나머지 음식들은 다시 정성껏 양념과 정성을 보태어 상에 올리시고 순차적으로 받은 상에서 다시 일부 입맛 등을 보고 인사 상을 만들어 보내는 일을 반복하셨는데, 결과적으로는 온 동네에서 장만한 모든 음식들이 집집마다 골고루 선을 보여 가면서 차분하고 느리게 기가 막힌 분배의 과정을 그려 가는 것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이었지만 서로가 작은 정을 아낌없이 나눔으로써 이 세상에서 가장 진솔한 정을 베풀고 마음으로는 서로가 한없이 풍족한 명절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로 가끔씩 외할머니의 명절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동네 주민 서로의 신뢰가 밑받침이 되었고 진실로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어려웠을 것이며, 요즘처럼 이웃 간에 담벼락을 높이 쌓는 세상에서는 실현하기 힘든 일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농사일을 하는 과정에서도 무언의 계약과 법칙이 엄연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농사 장비가 충분하지 못했던 시절에 두레, 품앗이 등 협동 작업에 익숙하였던 조상들이 작은 노동력을 애써 하나로 모아 작업의 효용을 높이는 지혜를 발휘하여 난관을 극복하였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농부들이 온 들판에 퍼져 농사일을 하는 동안 빠지지 않았던 농악대는 여기저기를 누비며 작업의 흥을 북돋았는데 아무도 이들에게 무위도식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도서지방에 애 경사가 생기면 이웃들이 나서 역할 분담과 십시일반의 과정을 거쳐, 음식 장만과 손님 대접을 어려움 없이 해내는 장면을 목격하곤 하는데 이것은 우리 선조들이 수도 없는 환란을 겪어 내면서도 모래알 같은 작은 힘이나마 하나로 모으고 자연이나 외부의 적에 대항하는 삶의 지혜가 은연중 바닥에 쌓인 결과로 보여 진다.

외할머니의 명절은 어려운 시절 일수록 그 빛을 발하는 우리들 선현들의 현명한 나눔의 방법 이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공존공생의 평등하고 소박한 삶을 누리는 기본 원리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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