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서산·온금지구 재개발 무엇이 문제인가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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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서산·온금지구 재개발 무엇이 문제인가 - 2
  • 최지우
  • 승인 2017.10.1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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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내화의 지속적 보전과 문화재적 가치 평가해야 한다
▲ 조선내화(주) 구 목포공장은 목포 근대화 과정의 중요한 산업시설로서 근대사적 가치가 있다. 80여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각종 내화관련 설비 및 건축물이 원형을 거의 간직하고 본래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목포시민신문=최지우기자]서산ㆍ온금지구 재개발 사업을 놓고 목포경실련과 목포도시재생시민네트워크 준비모임 등이 문화적 도시재생 추진을 촉구하고 나선 가운데, 가장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조선내화가 조선내화 공장을 국가 등록문화재 지정을 신청하며 목포 근대화 과정의 중요한 산업시설로서 근대사적 가치가 있음을 주장하고 나섰다.

(주) 구 목포공장 일원을 역사와 문화, 예술 공간 등으로 활용하여 목포의 새 명소로 활용 할 필요가 있고, 근대문화유산으로 접근하여 관광 및 문화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목포 서산·온금지구 재개발 사업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는 조선내화의 구 목포공장 활용방안을 살펴본다.

◇조선내화는 어떤 기업?

목포는 개항이후 상공업 도시로도 꾸준히 발전했다. 섬유, 요업, 주조, 정미, 고무, 유지 등 전 분야의 산업이 자리했다. 해방 이후 한때 고전의 시기도 있었으나 목포 경제는 목포 상공인에 의해 재건되기 시작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조선내화, 보해양조, 행남자기다. 특히 우뚝 솟은 굴뚝으로 인해 온금동의 랜드마크로 알려진 조선내화는 한국이 세계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던 포항제철의 파트너 회사로서 국가 공업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조선내화는 일제강점기 후반기에 창립되어 7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국내 굴지의 내화관련 기업이다. 창업 이후 끊임없는 도전과 개척정신으로 국내 내화물 100%를 국산화시킨 조선내화는 1970년대 초 국가기간산업인 중공업 발전에 한 축을 담당하며 오늘날 대한민국 발전과 더불어 세계적인 종합내화물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1900년대 초부터 목포가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상공업의 역할은 대단했고 그중 조선내화는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기업으로 꼽히고 있다.

조선내화의 창업주이자 전남일보 발행인이었던 성옥 이훈동회장은 해남 황산면 외립리 태생으로, 16세 때인 1932년 일본전기공업이 운영하던 인근 성산(聲山)의 쇼와(昭和)광업소에 견습사원으로 들어간다. 광산에서 해방과 함께 큰 기회를 잡고, 광산업으로 성공을 거둔 성옥은 해방 후인 1947년에 창립한 조선내화 상무로 경영에 참여한 데 이어 1953년 37세에 이를 인수해 대표가 된다. 독립이후 환수된 일본인 재산들을 정부에서 매각하자 성산남석광산을 헐값에 불하받고 완도 노화에 있는 광산까지 인수하여 내화연와의 원료가 되는 납석과 점토, 규조토 등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열성으로 연간 15,000톤의 내화연화를 생산하는 내실 있는 회사로 키웠다. 1970년대에 조선내화 포항1·2공장을 준공했고, 1986년엔 광양공장을 세워 제철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등 헌신하다 지난 2010년 노환으로 별세했다. 

구 조선내화 공장은 1994년까지 공장으로 운영되다가 포함공장과 광양공장이 준공되면서 중단됐다.

조선내화 관계자는“목포공장이 가동을 중지했지만 그 역사와 흔적은 우리 후세에게 영원히 물려줘야 한다. 비록 출발은 일본인이 시작했지만 이훈동이라는 한 개인의 불굴의 의지로 현재의 조선내화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조선내화(주) 구 목포공장은 목포 근대화 과정의 중요한 산업시설로서 근대사적 가치가 있다. 70여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각종 내화관련 설비 및 건축물이 원형을 거의 간직하고 본래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며 “조선내화(주) 구 목포공장 일원을 역사와 문화, 예술 공간 등으로 활용하여 목포의 새 명소로 활용 할 필요가 있다. 즉 근대문화유산으로 접근하여 관광 및 문화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고 강조했다.

◇어떻게 바뀌는가 ~ 서산온금지구의 재 지평 선도역할

조선내화 목포 공장은 목포시 온금동 112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29,230㎡ 건물11,024㎡ 규모로 1947년 5월 건립되었다. 1994년까지 우리나라 내화물 생산의 한 축을 담당하며 지역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발전에 이바지했다.

조선내화측은 추억의 역사와 문화를 부수고 시멘트 고층건물을 짓는 황량함을 지양하고 지난날 목포이야기가 있는 공간에 새로운 복합 문화 예술시설을 조성하여 관광지로 개발할 계획이다.  미술, 조각, 공예, 연극, 국악 등과 접목하며 볼거리, 먹거리와 문화의 향기가 살아있는 다양한 예술창작 공간으로서 목포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복합 문화예술의 쉼터로 만들 계획이다.

공장동 A,B의 석면 슬레이트 지붕을 철거하고 재시공한다. 벽면은 창고동 철거자재를 활용하여 최대한 본래의 모습을 보존한 상태로 보수 할 계획이다.

A 공장동에는 원료, 제품, 사진, 영상 등을 활용하여 조선내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표현 할  조선내화관을 설치할 계획이다.

턴널키론과 기계시설은 물론 굴뚝과 깨진 벽돌 그리고 벽에 쓰인 구호를 디자인화하여 갤러리로 리모델링 하게 된다. 참여 작가들에게는 창작공간인 개인부스를 제공 문화예술인들의 작업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차 한잔의 여유와 옛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을 감상 할 수 있도록 카페시설도  갖춘다.

 B 공장동은 관람객과 어린이들의 그리기, 만들기 등 체험 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지역사회와 소통이 있는 문화교육의 장을 마련한다. 아트페어를 개최할 수 있고 작은 공연장을 겸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곳곳에 영상미디어, 공예, 회화, 조각 등 공공 미술작품을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조선내화 관계자는 “목포의 새로운 문화관광자원 발굴 문화예술 창작 활성화에 기여하고 문화교육의 장으로써 지역문화발전에 기여함으로써 도시재생 사업지로 선정 받을 수 있게 하겠으며, 통영 동파랑벽화마을, 부산 감천문화마을 처럼, 서산, 온금동 문화촌 형성에 촉매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 목포시의 입장

서산온금지구 개발에 가장 큰 부담과 책임을 지고 있는 목포시의 입장은 명확하다.

도시재생과 서태빈 과장은 “목포시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이 사업은 2002년부터 해온 일이이고, 2012년부터 확정 됐던 일이다. 변한 것은 단지 일부 층수 변경에 불과 할 뿐이다. 목포시는 사업의 연속선상에서 법적 근거하에 하는 것이지만, 만약 주민들 중 억울함이 있을 시에는 충분히 들어보고 구제책을 논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시의 원칙은 그대로 가져가되 조선내화에서 불복을 한다면 최대한 설득하고 목포시정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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