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광석 사인에 대한 논란과 딸 죽음의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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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광석 사인에 대한 논란과 딸 죽음의 의혹
  • 류정식
  • 승인 2017.10.1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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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류정식기자]김광석 (1964년 1월 22일 ~ 1996년 1월 6일)은 한국의 가수,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1996년 1월 6일 김광석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세인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사인은 자살로 판명됐고, 가장 활발하게 음악 활동을 하던 시기인 데다 늘 메모 습관이 있던 사람한테서 아무런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던 점으로 그의 죽음은 여전히 미스테리다.

1982년에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에 김민기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데뷔하였으며,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일반 대중에까지 알렸으며, 동물원 활동을 그만둔 후에도 통기타 가수로 큰 인기를 누렸다. 그의 대표곡으로는 <사랑했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곳>, <서른 즈음에>, <그날들>, <이등병의 편지>,<먼지가 되어〉등이 있다.

서른 즈음에, 너에게, 사랑이라는 이유로, 사랑했지만, 먼지가 되어, 나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일어나,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 수 많은 히트곡으로 8, 90년대 가요계를 풍미하고 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가객' 故 김광석은 영원히 우리들 가슴에 머믈고 있다.

2015년 10월 MBC 리얼스토리 눈 <못다한 노래 못다한 이야기 김광석> 편에서는 김광석 20주기를 맞아 19년 만에 새롭게 태어난 故 김광석 씨의 미완성 곡, '그런걸까' 와 그가 남긴 기타와 악보, 유품과 미공개 사진, 그리고 유족들의 인터뷰 등을 소개한바 있다.

'자살' 이라는 발표와는 달리, 그의 죽음은 수 많은 의혹을 불러일으키며 당시 추적보도 프로그램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이후 재산을 둔 다툼까지 일어나면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죽음에 대한 의혹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김광석은 1996년 1월 6일 새벽 자택에서 전깃줄로 목 매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향년 33세로 자살로 알려졌으며 유족으로는 1990년에 결혼한 부인 서해순과 딸(김서연), 어머니(이달지), 큰누나(김광나), 둘째형(김광복), 작은누나(김광득)가 있었다.

당시 서씨는 김광석이 우울증에 시달렸고 당일도 오전까지 술을 마셨으며 먼저 잠이 들었다 깨보니 사망한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주장을 했지만 가족 및 지인들은 의혹을 제시했습니다.

세간에 알려진 김광석의 자살설에 대해 가족들은 "자살할 아이가 아니다"라고 일축했고 김광석의 누나들은 "부모보다 먼저 가는 자식은 가장 큰 불효다"라고 광석이가 항상 말해 왔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 김광석씨의 부인 서해순씨는 김광석이 우울증으로 자살하였다고 했지만 지인들은 "김광석 씨가 우울증이 있었으면 내가 몰랐을 리가 없다"며 "적어도 1년 넘게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으며 라이브 콘서트 1,000회 공연 할 때 매일 보다시피 했고 그동안 병원 가는 걸 한 번도 본적이 없다"라고 설명하고 있어 우울증에 대한 가능성은 떨어지고 있다. ?

또한, 부인 서해순씨의 말에 대한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김광석이 죽은 이후 얼마 안 돼 딸과 함께 도피하다시피 미국으로 건너 간점과 고 김광석씨 가족과의 재산 다툼이 극도에 달했고 김광석씨 아버지와 합의한 내용을 어긴 점 등이다. 즉, 2005년 11월, 김광석 부인 서모씨는 시아버지 소유의 음반 저작인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300만원의 벌금형을 받고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했던 바 있다. 김광석은 죽기 전에 자신의 저작인접권을 아버지에게 양도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광석 사망 후 부인 서씨가 딸과 함께 상속인의 권리를 요구하며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에 소송이 벌어진 것이다. 그후 서씨와 시아버지 양쪽은 이후 소송을 취하하고 김광석의 다시부르기 음반 4장의 저작인접권을 시아버지가 갖는 대신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모든 권리가 김광석씨 딸에게 양도된다는 내용의 합의약정을 맺었었다. 그러나 서씨는 이를 어긴것이다.

2015년 이상호 기자는 tvN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 녹화에서 “김광석의 죽음이 모두에게 알려진 것처럼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 아닌 타살로 믿고 있다”고 깜짝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이어 그는 “100%가 아니면 기사로 쓰지 못한다”면서 “1%의 부족함이 있어도 기사화하지 못한다. 그 중 대표적인 사건이 김광석의 죽음이다”라고 덧붙였다.

2017년 의문스러운 죽음을 다룬 영화가 제작되었고, 더불어민주당의 의원들이 김광석의 타살 의혹을 제기한바 있고, 딸이 2007년에 사망한 사실이 은폐되어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김광석의 사인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또한 김광석의 딸인 김서연이 어머니에게 피살되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다만 김광석 본인의 의문사는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 그래서 김광석법을 만들자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즉,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에 대해 재수사를 할 만한 중대한 단서가 발견되어 진실규명이 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해당 사건에 대해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자는 법이다.

한편 김광석 의문사는 처벌할 수 없지만 딸이 발달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2007년 사망한 사실을 2017년 9월 뒤늦게 밝힌 것에 대해 김광석의 유족과 일부 정치인은 김광석의 처 서해순을 딸 서연양 사망사건과 관련해 살인과 소송사기로 고발하여, 수사가 진행 중에 있다. 고 김광석씨 형은 서씨가 발달장애가 있는 딸이 폐질환에 걸렸는데도 방치해 2007년 숨지게 만들었다며 서씨를 유기치사 혐의로 고발했다. 고발된 서모씨(52)는 25일 “10년 전 딸이 갑자기 사망한 나머지 놀라고 황당했다”며 “경황이 없어 딸의 죽음을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기치사 혐의`의 경우 2007년 12월말 서씨의 딸이 숨졌을 때 사망 원인을 조사한 용인동부경찰서는 부검 결과와 병원 진료 기록 등을 근거로 `급성 화농성 폐렴` 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부검에서는 외상이 발견 되지 않았고 약물 검사에서는 감기약 성분만 나왔다. 서씨는 당시 경찰조사에서 “숨지기 전에 닷새간 감기 치료를 받다가 집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으나 숨졌다”고 진술했는데 그 진술과 부검 결과가 부합하다는 것이 당시 경찰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고 김광석씨의 형 등은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조치를 하지 않고 방치해 둬 숨지게 했다”고 하고 있다.?

서씨는 이날 JTBC 뉴스룸에 출연해 “남편을 잃고 혼자 애 키우고 외국을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친정 식구들이 서우(서연양의 개명전 이름)를 봐주고 하는 게 필요했는데 그렇지 않아 식구들과 소원해 졌다. 또 돈 때문에 감정이 나빠져서 언니하고도 연락 안하고 엄마하고도 소원해졌다”며 “(딸의 죽음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류정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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