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바다에 빠지다.(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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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바다에 빠지다.(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을 가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7.10.2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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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 작가/한국언론진흥재단 부산지사 차장
▲ 이동우 작가/한국언론진흥재단 부산지사 차장

영화제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다양한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12일(목)부터 21일(토)까지 개최된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도 총 75개국 300편의 영화가 초청돼 관객들을 찾았다.

개막작 ‘유리정원’은 몽환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주인공 재연이 어린 시절 자라왔던 숲을 몽환적 화면으로 담아냈다. 12살 때부터 한쪽 다리가 자라지 않아 발을 저는 재연은 생명공학 연구자이다.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 혈액을 이용한 생명연장 연구에 몰두하던 재연은 후배가 그녀의 연구 성과를 도용하자 실의에 빠져 스스로를 유리정원에 가둔다. 무명작가인 지훈(김태운 역)은 이런 재연을 관찰하고 재연의 모습을 소설로 쓰기 시작한다. 재연 역을 맡은 문근영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국내 개봉은 25일.

플래시 포워드에 초청된 호주영화 ‘심장소리’는 언뜻 불편할 수도 있는 영화이다. 주인공 올리(다니엘 뭉크스 역)는 11살 이후 고관절 장애로 인해 다리를 전다. 그러나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밝고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올리는 친구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은 올리는 전신이식수술을 결심하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거듭난다. 이름을 올리비아로 바꾸고 여성으로의 삶을 즐기던 올리. 그러다가 넘지 말아야할 선까지 넘어버리고 만다. 변해버린 올리의 모습으로 인해 친구들과의 관계도 소원해 진다.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 올리는 예전의 모습을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전신이식수술을 받는다. 스티브 크루즈-마틴 감독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10대들의 성장기를 담고 있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 10대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이 영화에 나타난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간의 갈등은 시나리오를 직접 쓴 주연배우 다니엘 뭉크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직 국내 상영 일정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곧 개봉할 예정이다.

김의석 감독의 ‘죄 많은 소녀’ 역시 10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느 날 경민이라는 여학생이 실종된다. 다리위에서 가방과 신발이 발견되고, 경찰은 경민이 투신자살했을 것임을 염두에 두고 수사에 착수한다. 마지막까지 경민과 함께 있었던 영희는 경민의 자살을 부추겼다는 의심을 받는다. 경민의 어머니는 영희를 원망한다. 경민의 어머니는 딸의 자살이유를 친구에게 찾으려 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은 위로받고자 한다. 친구들도 영희를 몰아세우고, 영희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미루고 책임을 떠넘기는 사람들. 영화는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현재를 비판한다. 영화의 제목이 말하는 죄 많은 소녀는 결국 우리 모두를 지칭한다. 보기 드문 수작이지만 아직 국내 개봉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일본 독립다큐멘터리의 거장 하라 카즈오는 다큐멘터리 ‘센난 석면피해 배상 소송’으로 한국을 찾았다. ‘센난 석면피해 배상 소송’은 2006년 오사카 센난 지역의 석면피해 노동자들이 사실을 은폐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8년에 걸쳐 제작되었으며, 총 600시간의 분량이 촬영됐다. 편집은 꼬박 2년이 걸렸다. 상영시간은 215분. 

한국과 일본의 석면피해 노동자들이 만나는 자리도 마련됐다. 지난 10월 18일 함께 영화를 관람한 한국과 일본의 석면피해 노동자들은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게 석면의 위험성을 알리는 활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영화제 기간 동안 영화의 전당에서는 ‘VR CINEMA IN BIFF’가 운영됐다. VR CINEMA IN BIFF는 스크린이 없어도 관객들이 VR기기를 통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VR 영화의 특징은 관객들이 고개를 돌려가면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된 영상을 관객들은 원하는 각도에서 디테일하게 감상할 수 있다. 영화의 장면이 너무 생생해 마치 관객들이 영화 속에 포함돼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장면에 흠칫 놀라기도 한다. 국내 영화제 중 VR 체험관을 운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제가 매력적인 것은 다양한 영화를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운이 좋다면 영화 상영 후 배우나 감독들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이들과의 만남은 영화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둘러보며 부산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도 다양한 영화제가 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업영화에 밀려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다양성 영화들이 이러한 영화제를 통해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래본다.
이동우(작가, 한국언론진흥재단 부산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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