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시적 소비 부채질하는 롱패딩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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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시적 소비 부채질하는 롱패딩 열풍
  • 류용철
  • 승인 2017.11.2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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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철 본사 대표이사
▲ 유용철 본사 대표이사.

지난 22일 새벽 서울 잠실에 있는 한 백화점 앞에서는 1000명 이상의 사람이 장사진을 쳤다. 평창 동계올림픽 공식 점퍼를 사려는 이들이었다. 순번표 배부 시간은 22일 오전 9시, 판매 시각은 오전 10시 30분이었지만 대열은 전날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옷 1000점을 준비했던 백화점은 뒤늦게 온 고객이 헛걸음을 하지 않도록 오전 6시에 구매가 선착순으로 마감됐다는 글을 SNS 등에 올렸다.

‘평창 롱패딩’이라고도 불리는 이 옷은 3만 점만 생산된다는 희소성 때문에 더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정가는 14만9000원이지만 중고물품 사이트에서는 이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광주와 부산, 울산 등 지역 백화점에서도 평창 롱패딩이 판매되면서 지역에까지 북새통이 빚어지고 있다. 한 백화점이 원하던 제품을 사지 못해 낙심한 소비자들을 겨냥해 ‘평양 롱패딩’을 내놓을 정도로 평창 롱패딩은 최고의 인기 상품이 됐다.

롱패딩이 화젯거리가 되자 SNS 등에서는 이를 둘러싼 논쟁도 벌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지나친 롱패딩 열풍을 “유행만을 좇는 천박한 풍토” “업계의 상술에 놀아나는 일”이라며 비난한다. 또 100만 원에 육박하는 제품이 있는 등 가격이 만만찮아 과소비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반대편에서는 “추워서 긴 점퍼를 입겠다는데 이러쿵저러쿵 하는 건 옳지 않다”는 식으로 반박을 한다.

조지 오웰은 1984년 우화 형식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말과 돼지 등을 의인화해 ‘생산하지 않으면서 소비하는 유일한 동물’ 인간사회를 비꼬았다. 우유와 달걀, 고기 등을 생산하지 않고도 모든 동물의 주인이 돼 맘껏 부리고 호사를 즐긴다는 것이다. 인간을 제거하기만 하면 자신들의 생산물은 모두 차지할 수 있다며 반란을 선동하는 내용이다. 인간의 부도덕한 소비는 소설에서조차 지탄의 대상으로 그렸다.

다양한 소비활동 중에서도 과시적 소비가 논란이다. 개인의 소비행동이 사회일반의 수준에 영향을 받아 모방하려는 사회심리학적 소비성향을 말한다. 미국의 사회·경제학자 베블렌은 재화와 서비스가 가진 실질효용 이외에 과시적 효용에 주목했다. 상품은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소비되고 보급된다는 것이다. 뒤젠베리는 ‘세상에는 하급재로부터 고급재의 여러 상품이 있는데 사람들은 보다 고급을 구한다’고도 했다.

겐지스강의 나라, 내세관으로 검약과 절제, 빈곤이 몸에 밴 인도에서도 최근 절제가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재력과 소비를 통해서 노골적으로 자신의 삶을 과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도로에는 벤츠, 아우디 등의 최고급 차량이 크게 늘었다. 돈 없는 젊은이들도 중국제 짝퉁을 통해 과시욕구를 해결한다. 자국상품도 품질이 좋지만, 브랜드를 중시하기 때문이란다. 짝퉁이지만 상표만 감쪽같이 붙이면 최고의 명품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수년 전 10대들에게 유행했던 모 회사의 겨울 점퍼에 이어 롱패딩이 ‘새로운 등골브레이커’가 됐다는 말까지 등장했다. 옷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자녀들의 요구를 들어주다 보면 부모의 등골이 휘어진다는 의미다. 가격이 싼 제품도 있으나 또래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최소 30만~40만 원짜리는 입혀야 한다는 게 부모들의 마음인지라 가뜩이나 얇은 지갑이 더 얇아지게 된 셈이다.

연말연시, 졸업과 입학 시즌이 겹친 12월에서 2월, 대한민국에서도 경기침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과시적 소비가 심하다는 소식이 심상치않게 들려온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고소득층은 초등생 자녀에게 200만원짜리 외투를 주저없이 사 준다. 부잣집 청년은 밸런타인데이에 90만원짜리 호텔 숙박 상품을 여자 친구와 이용하기도 했단다. 다르게 보이고 싶어하는 ‘과시적 소비’의 전형이다. 소비가 경기를 활성화하는 윤활유로 자본주의의 자양분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과시적 소비만큼은 공동체 위화감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절제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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