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동(법무사)의 산방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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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법무사)의 산방야화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8.01.2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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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미래, 해원(解怨) 1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는 비옥한 토지와 왕위를 놓고 각개각층의 군웅이 할거하면서 부자와 형제지간 뿐 만 아니라 인척과 친지들 사이에도 첨예하게 투쟁하는 과정에서 뼈를 깎아 내리는 원한이 켜켜이 쌓이게 되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사람들과 철석 같이 믿었던 동지에 의하여 인간으로서의 소망이 산산이 부서지고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하였던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아닐 수 없었다.

치우천왕이 세운 나라의 이름이 ‘구려’였는데 오와 월은 하나의 동족으로 구려에 속하는 여러 고을 중 하나의 읍락으로 이웃에 살아가다가 서로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우연하게 철천지의 한을 품은 적대국이 되었다.

와중에 오의 재상인 오자서는 온갖 재능을 겸비한 선비였지만 자신의 인생역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야말로 피 눈물로 점철된 한 맺힌 원한의 연속 이었다.

오자서는 원래 초나라의 명문 귀족의 집안으로 초장왕을 직언으로 힘들게 한 오거의 후손으로 오사의 둘째 아들이었다.

오사는 초평왕 태자 건의 스승으로 태부의 직에 임명 받고, 비무기는 보좌역인 소부로 근무를 하였는데 성품이 간악하고 잔인한데다 충성심이 없어 자신의 출세에만 눈이 멀어 있었다.

태자 건이 15세가 되던 해 진나라의 여인을 태자비로 맞이하는 과정에서 비무기가 영접을 나갔다가 태자비가 절세가인이라 급히 되돌아와 미인을 좋아하는 초평왕에게 “대왕께서 직접 비로 맞이하시고 태자에게는 다른 여자를 구해주는 것이 좋을듯 합니다”고 하였다.

비무기의 간언을 받아들여 진나라 여인을 비로 맞이하여 아들까지 낳은 초평왕에게 후환이 두려운 비무기는 태자 건을 모함하여 변경으로 쫒아낸 것도 모자라 태자비 사건을 빌미로 반란을 일으키려고 준비를 한다고 모함하기에 이르렀다.

초평왕이 오사를 불러 태자가 변심을 한 것이 사실인지를 묻자 강직한 오사는 “혼자 비방하는 간신배의 말만 믿고 골육의 정을 멀리해서는 안 된다”고 직간 하였다.

역사의 강물을 그릇된 곳으로 인도하는 간신배의 집념은 산과 강둑을 뒤엎는 집요함으로 골육의 상쟁에 불을 붙여 초평왕으로 하여금 태자에게 오히려 붙잡힐 수도 있으니 태자를 붙잡아 처형하도록 명령을 내리게 하였다.

왕의 엄명을 받은 사마분양은 궁여지책으로 태자에게 사람을 보내 급히 피하도록 연락을 하자 태자는 송나라에 망명하여 일신을 의탁 하였다.

간신배는 그것도 부족하여 훗날의 안위를 위하여 강직한 오사와 함께 두 아들을 제거할 계략을 세워 초평왕으로 하여금 오사를 붙잡아 “두 아들을 불러들이면 살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고 하자, 오사가 이르기를 “큰아들 오상은 청렴하고 절개가 있으며 효심이 깊으니 죽음을 무릅쓰고 올 것이지만 오자서는 지혜롭고 용맹하니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오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오상은 아버지를 위하여 같이 죽을 것을 각오하였지만 오자서는 차라리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 복수할 것을 다짐하며 피 눈물을 삼키며 태자 건이 있는 송나라로 피신을 하였다.

송나라에 가서 태자 건을 만났으나 곧바로 화씨의 난으로 또다시 정나라로 피신을 하였다가 여의치 않아 진나라로 갔는데 진경공이 정나라를 도모하자고 꼬이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동조하여 정나라로 되돌아 갔으나 우연히 태자 건이 거느린 몸종과의 갈등으로 정나라에 밀고하는 바람에 태자의 목숨은 유명을 달리 하였다.

오자서는 태자 건의 아들 승과 함께 오나라를 향하여 죽을힘을 다하여 도망쳐 국경에 이르렀는데, 앞에는 강물이요 뒤에는 추격 병이 따라오니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순간 장강의 한 어부가 나타나 그를 태워 오나라 땅에 내려주었다.

천신만고 끝에 기구한 목숨을 부지한 오자서는 백금의 칼로 보답하려 건넸지만 어부는 “초나라에서는 오자서의 목에 5만석의 곡식과 벼슬을 현상금으로 걸었기에 어찌 백금의 칼이 문제가 되겠느
냐”고 일거에 거절하였다.

하늘이 오자서의 원한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절체절명의 순간에 어부를 보내어 목숨을 구했는지는 몰라도 병마를 이겨내고 걸식을 하면서도 오나라의 수도에 가까스로 도착하여 태자 광(합려)의 빈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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