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사는 우리도 우리를 우습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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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사는 우리도 우리를 우습게 본다
  • 류용철
  • 승인 2018.03.2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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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포시민신문 대표이사.

“지방에서 소박하게 다시 시작하지.”

잠이 안 와 새벽에 우연히 본 영화 ‘성난 변호사’에 나온 대사 한마디다. 잘나가는 주인공인 변호사가 한때 코너에 몰리자 주변에서 비꼬듯 던진 말이다. 사내 불륜이나 회사에 큰 손해를 입혔을 때 부서장이 너그러운 표정으로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자며 지방 근무를 권하는 장면은 수십 년 동안 TV드라마의 단골 메뉴가 아니었던가. 한동안 잊었던 이 장면을 불과 3년 전 개봉한 영화에서 다시 보니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이 지방을 보는 시선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

수능 점수에 맞춰 지방 의대에 진학한 서울내기들은 졸업 후 인턴과정을 고향에서 하기 위해 대부분 떠나는 바람에 지역 대학병원은 이들이 없어 입원 환자를 받지 못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오죽했으면 수도권 학생의 비율을 조금씩 줄이게 됐을까.

최근 충청권의 대학에 자리를 잡은 한 지인은 수도권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다가 서울사람들의 사고 방식에 적지 않게 놀랐다고 한다. 지역에선 들어보지도 못한 대학이라도 수도권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호의 대상이었고, 지역의 괜찮은 사립대를 단지 거리가 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잡대(지방의 잡스런 대학교)’로 치부하더라는 것이다.

수도권 어른들의 사고방식이 이렇다 보니 그들의 자녀들도 지방을 우습게 아는 건 마찬가지다. 수개월 전 초등교사 임용 축소 계획이 발표되자 일부 서울교대생은 지방 교대생의 서울 진입을 막기 위해 서울지역 가산점을 올려달라고 하고, 일부는 아예 대놓고 임용고시 경쟁률이 미달일지라도 지방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물론 교원 수급정책에 실패한 정부 탓이 크지만 학령인구 감소가 어제오늘의 일이었나 싶다.

서울이 지방을 바로 보는 눈이 이렇지만 더욱 큰 문제는 지방에 사는 우리도 우리가 사는 지방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에 사는 것이 큰 잘못된 삶을 산 것인 양 서울을 동경하며 서울과 인연을 의기 양양해 하고 지방에 머무는 것을 스스로 실패한 것처럼 생각한다.

이런 사고는 현재 지방선거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지역에 열심히 봉사하며 지방일꾼으로 일한 생활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면서 서울 등 중앙에서 일하다 왔다하면 무슨 대대한 줄세나 한 것첨 존경하며 우리의 살림살이를 그들에게 맡기고 만다.

지방자치가 올해로 20년을 맞지만 이런 우리의 식민지적 사고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지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것 이외 한 번도 지역 문제에 관심 없이 살다가 선거 때가 되면 얼굴을 내밀며 표를 구걸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들에게 어떠한 비판도 하지 않고 그들의 뒷꽁문니만 따라다녔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삶이 개선되기보다는 더욱 나빠지기만 했다.

정치에서 이런 지방 비하적 사고는 우리의 생활 곳곳에 도사리며 우리를 더욱 간교하게 만들고 있다. 교육의 현장에 서울 소재 대학 진학을 부채질하며 서열 지상주의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행정에서 조차 서울 중심의 개발주의를 모방하면서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선진사례 모방이란 미명하에 지역 실정과 배치되는 사업이 추진돼 혈세를 낭비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사고는 또 다른 차별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차별은 또 다른 차별을 유발하면서 착취와 파괴의 괴물로 변해간다.

우리는 자신들은 억눌려온 삶이 일상화돼 이런 사고를 못 느끼는 것일지 모른다. 지방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중앙의 식민지처럼 살아왔다. 또 다른 식민지를 찾아 우리는 살아왔다. 이렇다 보니 모든 게 서울 중심이고 지방은 기피의 대상이 돼버렸다. 늦었지만 많은 이가 이제는 조금씩 깨닫고 있다. 지방의 문제는 서울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허구라는 것을. 우리 속에 자리 잡은 서울에 대한 우상을 조금씩 지워야하는 사실을. 시나브로 ‘지방 소멸’이 목전에 와 있다. 되살리는 데 드는 엄청난 비용은 금방석에 앉아 이것 저것 혼자 다 먹어 비만 덩어리가 된 중앙정부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한다.

우리가 지방선거에서부터 지역에 대해 존경을 해야 한다. 뜨네기 처럼 왔다 표를 구걸하고 당선되면 굴림하고 낙선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런 인물이 아닌 진정 지역내 생활 정치인을 뽑아 우리의 살림을 맡겨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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