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도시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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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도시의 상징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8.05.1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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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기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교수, 생태학)
 

마을가꾸기, 지역활성화, 도시재생 등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에 좀 더 선진적인 곳이라면 아무래도 일본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유럽, 미국 등 도시화 과정을 일찍 겪었던 나라가 있지만, 자연과 인간 사이의 공존과 다양한 삶의 현장을 친밀하게 공감할 수 있는 곳은 일본이 많다. 특히 우리나라의 70~8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의 모델은 일본이기도 했고, 과거 일본의 고도성장의 폐단을 극복하고,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도시를 재생하고자 노력하는 시민정신은 돈 만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해결할 수 없다는 중요한 가치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반면교사이다.

도시의 상징이 무엇일까. 생뚱맞은 질문일 수 있으나, 사실 이걸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시민도 별로 없을 것이다. 세계 여러 도시를 다녀보면서 느끼지만, 그 질문에 대한 나의 결론은 ‘길’이라고 본다. 대로(大路)일 수도 있고, 골목길일 수도 있고, 또 샛길일 수도 있다. 도시의 어느 곳을 가더라도 반드시 ‘길’을 걷는다. 늘 길 위에 서서 이정표를 찾기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버스도 기다리고, 또 음식도 사먹는다. ‘길’은 도시의 모든 시스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도시의 상징이다. 일본 교토시엔 土寺 부근에 ‘철학의 길(哲の道)’이 있다.

▲ 교토의 철학의 길.

일본의 철학자이며 교토대학 교수였던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가 늘 이 길을 산책하면서 사유를 하였다고 한다. 그는 불교 등 동양사상 중심에서 서양철학을 수용하여 새로운 철학체계를 수립하여 교토학파를 형성한 대학자이다.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 너도 나도 벚꽃을 보며, 철학을 나누는 길이 되었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 하이델베르크시에는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이 있다. 
 

▲ 하이델베르크시의 ‘철학자의 길’

이 곳은 독일의 명문 하이델베르크대학을 중심으로 네카어강(Necker River)에 위치한 길로서 헤겔, 야스퍼스, 하이데거 등 당대의 철학자들이 산책하며 명상에 잠기고 영감을 얻었다는 유래가 있다. 이런 철학의 길은 아니더라도 의미있고, 흥미로운 길들이 세계 도시엔 상징으로 존재한다. 

일전에 지면을 통해 소개했던 일본 항구도시 히로시마현 오노미치시(尾道市)는 생김새가 마치 목포와 비슷하게도 항구 배후에는 유달산 같은 산이 있고, 산을 오르는 길목마다 오래된 사찰이 있다. 고대 일본의 명승인 공해(空海)스님이 다녀간 기념으로 후대에 걸쳐 88개소의 사찰을 세웠다고 하는데, 현대에도 그 만큼의 크고 작은 사찰이 오노미치시에 존재한다. 이러한 오노미치시에는 ‘시인의 길’이 있다.

▲ 오노미치시의 ‘시인의 길’. 현재 주거지를 활용하면서 길의 향방에 따라서 포장 디자인을 달리하여 미적 감각을 높임 (홍선기 촬영)

일본 근대 유명 여류소설가인 하야시후미고(林芙美子)가 관동대지진을 피하여 오노미치시로 이사를 한 후, 작품을 위하여 사찰과 산을 오갔던 길을 오노미치시는 ‘시인의 길’로 명명하였다. 이 길은 넓지 않은 골목길로 두 사람이 겨우 스쳐지나갈 정도로 좁다. 그러나, 원래 꼬불꼬불한 길이 특징이라 이름 붙여진 오노미치시의 특성을 살려 도시재생을 하면서, 최초로 ‘시인의 길’을 조성하게 된 것이다. 일본 근대화의 시대적 건축이 다 남아 있는 오노미치시는 일본 최초의 ‘日本遺産‘으로 지정되어 있다. ’哲學者의 길‘, ’哲學의 길‘, ’詩人의 길‘.... 모두 바쁜 일상의 우리들에게 잠시나마 사유의 시간을 남겨주는 참으로 멋진 길이라고 본다. 과거엔 사람이 다니는 길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어 왔지만, 이젠 차량 통행을 위하여 길이 생긴다. 그러다 보니, 천천히 사색하면서 도시를 느낄 수 있는 오솔길이 사라지고 있다. 요즘 도시재생사업을 통하여 의미 있는 길 찾기가 반짝 사업으로 나오고 있지만, 과연 그 길이 한 도시를 상징할 심벌이 될 수 있을까.

▲ 하야시후미고(林芙美子)의 동상. 오노미치시 (홍선기 촬영)

목포에 살면서 무안에 있는 도청에서부터 목포항까지 걸어보기도 하고,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입암산까지 걷기도 하고, 목포역 주변 원도심과 유달산을 걸어본 경험이 있다. 각 구역마다 형성된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건축이 달랐지만, 흥미로운 곳은 역시 유달산과 원도심이었다. 현재 이곳에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되면서 일제 강점기 건물이 멋진 카페나 식당으로 바뀌고 있고, 도로도 정비되어 아름답게 형성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꼭 ‘철학자의 길‘은 아니더라도 지역이 배출한 문인, 학자를 상징하는 ’품격 있는 길‘이 하나라도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MB정부에선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전국을 ’자전거 길’로 만들었는데, 박근혜정부에서도 무슨 ‘길 만들기’ 사업이 그렇게 많았던지... 그러나 정작 시민들이 사유하고, 힐링할 수 있는 도심 숲과 길 조성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다는 것은 아직도 우린 자동차에 쫓겨 ‘인간 중심의 삶‘을 향유할 수 없는 척박한 도시에 살고 있구나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목포시에도 명품길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목포시에도 소박하고 아름다운 길이 있다. 느티나무길도 있고. 이것을 어떻게 명품길로 만드는가는 시민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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