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얼굴 ‘민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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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얼굴 ‘민어회’
  • 김영준
  • 승인 2018.08.0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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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회의 맛을 가르쳐 준 민어

[목포시민신문=김영준기자]‘괠괠괠’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지만 기특한 구석이 많은 민어.


이번 8월에는 임자도에 놀러와 민어를 맛보는 것은 어떨가. 임자도에 가기 어려울 때는 가까이 목포 만호동 민어거리에서나 시내 곳곳에 있는 전문식당에서 민어회를 맛보는 것도 좋다.


목포의 민어회는 이른바 ‘선어회(鮮魚膾)’의 대명사다. 물고기가 죽은 지 하루 이틀 살을 숙성시켜 먹는 회를 선어회라 하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활어회와 대비되는 말이다.


생선살을 저온에 숙성하면 감칠맛 수용을 촉진하는 이노신산(inosine acid)이 늘어난다. 바로 죽인 생선의 살이 사후 경직으로 인해 쫀득한 질감은 있지만 혀를 감는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적은 이유는 이노신산이 생성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노신산 생성으로 감칠맛과 육질의 쫀득함이 균형을 이루는 시점까지 숙성을 잘 시킨 회가 훌륭한 선어회가 된다. 가늘게 썰수록 살의 단면이 공기와 접하는 면적이 넓어지고 숙성도가 높아져 감칠맛이 더해진다.


조선 중기 시인 이응희(李應禧, 1579∼1651)는 민어를 이렇게 노래했다.
입이 크기는 농어와 닮았는데 / 비늘은 농어보다 조금 크다네 / 피부는 풍성한 살로 채워졌고 / 창자는 속현을 가득 안은 듯 / 솥에 끓이면 탕이 맛있지만 / 회를 치기에는 좋지 않아라 / 보시라 건조시킨 뒤에는 / 밥 먹을 때 손이 먼저 가리라


이응희 역시 풍성한 민어의 살, 끓인 탕, 민어 자반에 감탄하고 있는 것이다. 속현을 가득 안았다고 한 것은 민어 부레가 거문고와 같은 악기를 만들 때 접착제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다만 회치기에 좋지 않다고 한 것은 당시의 냉장 기술로는 선어(鮮魚) 보관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언제부터 민어회 먹었나


조선 개항 초 일본인들은 한국어를 익히기 위해 한자어에 일본어 발음 표기를 붙인 교재를 만들었다. 거기에 물고기를 설명한 항목이 나오는데, 당시 어류를 어떻게 요리해 먹었는지 알 수 있다. 일곱 종류의 물고기가 예문에 등장한다. ‘붕어는 찜해라, 농어를 회쳐라, 잉어를 반찬하여 먹자, 민어로 임(鹽)치를 만들어 두자’라고 먹는 법을 소개한다. ‘임’자 옆에 소금 염‘鹽’자 훈을 붙인 걸 보면 소금에 절인 민어를 임치라 불렀던 모양이다. 1930년대 일본인들이 편찬한 ‘목포부사(木浦府史)’를 보면 민어를 염장해서 건어물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민어가 잡히면 일단 염장 보관하여 나중에 굽거나 찜해서 먹었다.


그럼 언제부터 민어를 회로 먹기 시작했을까?
만호동 민어거리에 위치한 영란횟집 박영란 사장의 인터뷰 자료를 보면, 1969년 어머니 김은초 씨가 처음 영업을 시작할 땐 흑산 홍어나 톱상어의 살을 잘게 썰어 막걸리에 무쳐서 술안주로 내놓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민어회를 한 접시 2천 원에 팔기 시작했는데 그게 인기를 끌어 오늘까지 이어졌다. 회 한 접시를 시키면 내장까지 넣고 푹 끓인 매운탕은 공짜로 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목포에서 태어난 재일동포가 고향에 왔다가 이 집 민어회를 맛보고는 껍질은 살짝 데치고(일본어로 ‘유비키’) 부레도 회처럼 썰어 내놓으라고 조언을 했단다. 그래서 오늘날 민어 한 상 차림 메뉴가 이뤄졌다. 짐작컨대 목포에 많이 거주했던 일본인들의 선어회 전통이 1960년대 말 민어회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목포 구도심을 걷다 보면 다른 지역에선 보기 힘든 선어회 메뉴를 알리는 식당들이 여럿 있다. 민어가 한국인에게 선어회의 맛을 가르쳐준 것이다.

 

■ 아무 양념 없이 그저 민어회 한 점


뭐니 뭐니 해도 민어의 참맛은 맨살 채 썰어 내놓는 회에서 살아난다.


아무리 좋은 양념이나 정성 들여 만든 초고추장일지라도 있는 그대로의 민어 살 맛을 당해내지 못한다.


처음 초고추장을 찍지 않은 민어 살을 입안에 넣으면 혀가 심심하다는 느낌이 든다. 살점을 혀 위에서 몇 번 굴려 전체의 촉감을 맛본 뒤, 양 어금니 쪽으로 밀어 살을 잘근잘근 씹어보자. 갓 잡은 광어나 우럭의 살이 지닌 쫄깃함과는 다른 촘촘한 질감이 느껴진다. 혀에 닿는 활어회의 촉감이 나일론 같은 탄력 있는 합성섬유가 살갗에 닿는 것에 비유하자면, 민어회는 부드럽고 흡수성 뛰어난 면직물이 피부를 감는 느낌을 준다.


어느 정도 씹은 살점을 혀끝으로 애감아 혀 뒷부분으로, 목젖을 향해 옮기면 담백하던 살맛이 달게 변하고 숨을 들이쉴 때 살 냄새가 상큼하게 살아난다. 순수한 단백질의 맛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양념에 진하게 밴 불고기에서 진정한 고기 맛을 느낄 수 없듯이, 초장에 빠트린 민어 살점에서 진정한 회의 맛을 음미할 수 없다. 민어가 사는 심해의 묵직함을 그대로 입안에 재현하고 싶다면 초장을 찍지 말고 그냥 먹어보기를 권한다. 입안이 정 심심하다면 회 한 점 삼키고 나서 상에 오른 잘 익은 묵은지 한 조각으로 염분을 공급하면 된다. 그 뒤에 다시 회 한 점을 물면 한층 더 달착지근하게 달라붙는다.


목포에서 민어를 한번 먹어본 사람에겐 서울이나 수도권 식당의 민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목포에서 민어를 맛보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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