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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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박승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8.09.05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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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도움이되는 만남
 

1990년대 초 우리나라에는 가수 노사연씨가 부른 가요 ‘만남’이 온 국민의 애창곡이 되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로 시작되는 가요다. 사람의 만남은 필연이라는 뜻을 가진 가요였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만나서 성공하는 사람이 있고 만서서 실패하는 사람이 있다.

지금부터 2700년 전 중국 제나라 시절 관중은 친구 포숙을 만나서 사형을 면하고 제나라의 재상이 되어서 40년간 봉직 하면서 제나라를 경제 대국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3김 시대를 주름잡았던 전 김대중 대통령은 1962년 당시 대한 YWCA 총무였던 이희호씨와 결혼하여 당시 한국여성계의 거두이며 막강한 여성조직을 움직였던 이희호 여사의 도움을 받았으며 말할 수 없는 정치적 탄압과 옥고에도 용기를 잃지 않도록 조언하며 눈물의 기도를 드렸으며 사형선고 후에는 끊임없이 일일서신을 보내어 남편이 변절하지 않도록 하며 금식기도를 드려 하늘의 보좌를 움직여 석방되었으며 대선 때 마다 치밀한 스케쥴 관리 등 여러 모양으로 내조하여 대통령 당선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노벨 평화상을 받는 일에도 내조 하였다.

참으로 훌륭한 만남이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화가 김환기씨는 1944년 김향안씨와 재혼하여 서울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당시 김향안(본명;변동림)씨는 명문 집안의 딸이었다. 화가의 어려운 형편에 아이까지 셋이나있는 남자와의 결혼을 찬성할 부모는 없었다.

그러나 김향안씨는 화가 김환기씨의 재질을 믿고 성씨마저 변씨에서 김씨로 바꾸어 김환기씨와 재혼 하였다. 김향안씨는 결혼하여 김환기씨가 화가로써 대성 할수있도록 내조하였다. 1955년 남편보다 1년먼저 프랑스에 건너가서 남편이 프랑스에 와서 그림을 그릴수 있도록 화실을 준비하고 당시 프랑스의 화가들과의 인맥 형성을 준비하였다. 그후 1956년 김환기씨는 프랑스로 건너가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또한 1963년 김환기씨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화가로서 성공 할수있도록 내조하였다. 1974년 김환기씨 사후에도 뒷마무리를 잘하고 김환기 기념미술관을 설립하여 오늘날 한국최고의 화가로 존립 하도록 하였다.

사람이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잘 설명 해주는 사례들이다.

오늘 우리는 누구를 만나야할까? 기왕에 만나 가족을이룬 사람을 어떻게 외조하고 내조 할것인가?

잘 생각 하시어 실행 하세요!

2018.9.3. 가을 아침

필자 : 박 승

목포문화원 향토문화연구위원
한국 아름다운삶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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