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정통성 위해 ‘시민의 날’ 재조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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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정통성 위해 ‘시민의 날’ 재조명해야
  • 김영준
  • 승인 2018.10.0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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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회 · 2회 '목포진 설인일' 시행 … 1965년 10월 11일로 변경돼

[목포시민신문=김영준기자]■ 10월1일 목포시민의 날 논란
목포진 설진일 ‘4월 15일’ 검토 필요
군산시·인천시도 개항일에서 변경해

목포의 정통성을 찾기 위해 ‘목포시민의 날’을 재조명해야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목포시가 해마다 축하행사를 하고 있는 ‘시민의 날’인 10월 1일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기념해왔다.


그 처음은 1907년, 목포개항 1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모일 공회당(公會堂)을 짓기로 결의한 데서 비롯했다.

완성됐을 때의 규모는 20평의 홀에 대합실 등 12평을 더한 2층 목조건물로 일층은 사무실로 대여하였는데 일제강점에서는 토지소유자이던 당시의 상업회의소 사무실이었고, 2층을 공회당으로 썼다. 지금의 목포상공회의소 건물은 해방 후 화재로 전소한 자리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그리고 개항 20주년이 되는 1917년에는 일제가 강점한 뒤 처음 갖는 큰 행사로 목포개항 20주년을 기념하여 대대적인 기념 축전을 열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제시대 일본인들만의 행사였지 당시 목포 사람들은 이에 대해 전혀 관심 밖이었다. 목포 사람들은 단오날 대규모로 모여 체육행사와 놀이를 즐겼다.

이렇게 시작한 10월 1일 개항일 기념행사는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사라졌다가 1965년 목포 시민의 날로 지정되면서 다시 살아났다.

△10월1일 개항일이 목포 시민의 날로
1963년 처음 목포시민의 날이 지정됐다. 개항일인 10월 1일이 아닌 ‘목포시민헌장’을 처음 선포한 3월 15일이 ‘제1회 목포시민의 날’이었고 관련 행사는 5월에 거대하게 치러졌다.

첫해 시민의 상도 지정돼 조희관 교육자가 문화부분에서 수상했다. 조희관 교육자는 전국에서 최초로 목포예총을 설립했으며 목포여고 전신인 항도여중 교장을 엮임해 여성 교육 활성화에 헌신한 공을 인정받았다.

다음 해인 1964년에는 시민의 날 기념행사가 열리지 않았다. 이후 1965년에 목포시민의 날이 10월 1일로 변경돼 3회 기념행사 치러졌다. 변경이유는 명확하진 않지만, 1965년 목포시는 9월 27일에 ‘목포시민의 날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시민의 날을 10월 1일로 한다’고 규정됐다.

이후 목포시는 일본에 의해 강제 개항된 개항일을 기념하는 것은 일제 식민사관에서 비롯됐다는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에도 50년 넘게 기념행사를 치러왔다.

△목포시민들의 정통성 찾기
2년 전, 목포시가 목포의 근원을 찾는 사업을 추진해 주목을 끌었다. 그동안 잘못 알려진 목포의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한 ‘목포 정명(正名) 찾기’용역을 발주하고 목포의 정체성 찾기에 나섰다.

이때 목포시는 그동안 1897년 10월1일 목포 개항일을 기념하는 시민의 날에 대해 학술적 역사적 의미에 대해 재조명할 움직임도 보였다.


2016년 목포시가 발주한 ‘목포 정명(正名) 찾기’ 용역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목포(木浦)’가 언제부터 사용되었으며 목포 형성 시기 등에 대해 고문서를 중심으로 고증했다.

또, 시는 1897년 10월 1일 목포항의 개항에 대한 역사적 의미와 시민의 날 지정에 대한 적합성을 재논의 했다.

‘목포 정명(正名) 찾기’ 용역 중간보고서는 ‘목포’라는 지명이 각종 고문서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조성왕조실록이다.

1439년 세종 21년 4월 15일(양 5월 25일)에 병조에서 건의하고 이를 의정부의 의결을 거쳐 임금께 보고한 내용에 처음 ‘목포(木浦)’지명이 기록된 것.


오홍길 향토사학자는 “고려시대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 ‘목포’라는 지명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현재의 목포를 지칭한지 분석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며 “이후 목포라는 지명은 조선왕조실록 등에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만호진이 설치돼 폐진되는 1895년까지 목포진이 목포라는 지명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목포의 역사를 논할 때, 첫째로 꼽힐 것은 목포진의 설진(設鎭)일이다. 왜냐 하면 이때부터 목포는 자타가 공인하는 땅으로 자리매김 되었기 때문, 달리 말하면 목포의 역사적 탄생일이고 출발시점이다. 올해로 579년이 된다

. 목포 600년의 역사다. 목포진 설진일인 1439년(세종 21년) 4월 15일(양 5월 25일)이 목포가 역사적으로 탄생한 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수의 인식은 목포의 역사는 1897년 10월 1일 개항이 되고서 비롯된 시작됐다고 알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전국 자치단체 시민의 날의 변경
군산시는 개항일 5월 1일을 시민의 날로 지정해 운영해오다 1992년 최무선 장군이 왜구를 몰아낸 진포대첩 승진일인 10월 1일을 시민의 날로 변경 운영하고 있다.


인천시 역시, 1965년 일제강점기 개항일인 6월 1일을 시민의 날로 지정했다. 이후 시는 인천항 준공일인 5월 10일로 변경했다가 또 다시 직할시 승격일인 7월 1일 변경했다. 이후 시는 인천시의 역사성을 찾기 위해 인천 정명(定名)일인 10월 15일을 시민의 날로 변경 운영하고 있다.

△목포 시민의 날 변경의 필요성
목포의 역사적 정통성 세우고 목포시의 역사적 자존감 회복을 위해서도 시민의 날 변경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일제 강제 개항이란 논란을 떨쳐내고 목포시가 600년 된 여사적 도시라는 정통성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2년 전, 용역팀은 “부산과 군산, 인천 등이 시민의 날을 한말 근대적 개항일로 지정했다가 민족적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역사적 기념일을 찾아 시민의 날을 변경 지정하고 있는 추세이다. 목포시도 목포의 정명인 날을 역사적 기념일로 지정해 기념해 600년 유서깊은 역사적 도시의 이미지를 선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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