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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분노와 큰 분노 - 이철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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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7  13: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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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노하는가?"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의 첫 도입부이다. 언젠가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불현듯 그 시가 생각이 나서 다시 찾아 읽어 보았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중략). 우습지 않으냐 일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중년이 된 어느 날부터 세상살이의 꼬임이 분노가 되어 아내는 만만한 그 분노의 표출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누군가는 어떻게 화를 내고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를 생각하며 화를 낸다는데 나는 버럭 내고 마는 타입이다. 중년이 다 된 아내가 새삼 심리학을 공부하더니 내 홧주머니, 즉 화의 씨앗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부터 나의 무식한 화풀이방식은 사라졌다. 하지만, 몇 년 전 나라를 송두리째 뒤흔든 두 여인에 대한 나의 분노는 어떤 분노였을까?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여름 노모에게 ‘나는 이 더운 날 죽기를 각오하고 들일을 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느냐?’고 예전 국민교육헌장을 페러디하여 언성을 높인 분노는 또 어떤 분노였단 말인가?

필자의 사사로운 분노는 그 대상이 가까운 가족에 한정이 되고 그러다 보니 피해를 받는 대상도 어찌 보면 피해보상(?)을 하소연할 곳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큰 사람이 분노할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지금 우리는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을 몇 개월에 걸쳐 지켜보고 있다. 지난 봄(아마 4월 이었죠)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다. “다시는 대통령이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함부로 남용하여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해서라도 피고인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6개월 전 일인데 우리는 누구의 판결문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구분이 불가능한 판결문을 다시 한번 들어야 하는 불행한 일을 목격하였다. 얼마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의 권력 일탈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이 있었다. 본 난에서 불행한 과거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고 언급한 바 있었는데 두 사람의 재임기간이 순서만 다를 뿐 같은 판결문을 보아야 하는 백성은 이것이 교훈인지 코미디인지 사람 무시해도 정도가 지나친 것 같다. “다시는 이런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하려”함이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판결문이 너무도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이 전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총체적 일탈은 어쩌면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친 촛불집회가 단초를 제공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그래서 하찮은 필자의 분노와 권력을 쥔 큰 사람의 분노는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두 사람은 할 말이 있을런지 모른다. ‘직선제로 선출된 대통령으로서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권한을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행사’했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백성들은 그 의무를 져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한 죄는 도대체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그것도 연속해서 두 사람이나...

작가 유시민은 “대한민국 헌법은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손에 넣은 일종의 후불제 헌법이었고, 그 후불제 헌법이 규정한 민주주의 역시 나중에라도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하는 ‘후불제 민주주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과거 총, 칼 앞에 치룬 피비린내 나는 대가로도, ’통치행위‘란 이름으로 감쌌던 권력의 일탈로도 민주주의의 후불을 치루었다. 이제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는 ’문화적 유전자‘를 부단히 배양한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도 후불의 아픔은 이 정도에서 그쳐도 족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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