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환 시인
*억새 바람에 스러지다
-어느 선량의 뒷모습
최재환
자를 대고 힘차게 내리긋는
연필 끝,
억새는 일제히 지평에 늘어 선 채
바람이 스러진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훌쩍 제 키를 뛰어 넘는다.
하늘을 나는 것들도
끝내 땅에 내려 삶을 마무리 하듯
목을 늘이고 하늘을 넘봐도
톱날처럼 사나운 바람이 어깨를 다독이면
긴 항해를 포기할 밖에 없다.
세상 다 그런 거라고 자위하면서
언젠가는 우리에서 쫓겨날 운명을 점치며
여물을 씹는 송아지처럼
눈,귀 모두 틀어 막고 정의로 위장한 채
산골 마을 반상회 같은 이야기를
밤낮으로 짓씹어야 한다
훗날 역사엔 무어라 기록될지
미리 걱정하는 건 이미 기우杞憂다.
삼국지, 열국지도 숨죽이는데
연산, 광해는 촛불일까, 태극기일까.
원칙과 믿음, 비리와 부조리가 물고 물리는
허우대만 멀쩡한 동방 예의국
바람의 방향을 진작 짐작했더면
쓰러져도 후회나 없을 걸
하늘은 언제까지나 내 편일 거라 자만自慢하면
종내는 강자에게 먹히기 마련
건강한 하루는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가고 만다.
<최재환 시인 약력>
. 서라벌 예대 문창과 졸업
. 중앙일보 신춘문예, 월간 시문학 추천으로 등단
. 목포문협 회장/한국현대시혀 부회장 역임
. 한국현대시인상/ 한국향토문학상/ 한정동아동 문학상/ 전라남도 문화상 등 수상
. 도내 중등교장으로 퇴임
. 지은책; 표구속의 얼굴/이승기행/청계리행/바람에게 길을 묻다 등 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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