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칼럼 - 3.1운동과 우리헌법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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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칼럼 - 3.1운동과 우리헌법의 기원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9.01.1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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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제를 기초로 하는 우리나라는 새로운 독립된 나라에 필요한 모든 기초인 독립선언, 민주공화정, 제헌적 헌법 등등이 1919년에 시작되었고 그 뿌리는 3.1독립선언운동에 기원을 둔다. 따라서 올해 2019년은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 임시정부 100년을 맞는 역사적, 정치적, 법적으로 각별한 해이다.
 
우리는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했으며 7월 4일이 미국의 독립기념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7월 4일이 국내외적으로 완전한 독립국을 인정받은 해일까? 그렇지 않다. 미합중국이란 공식명칭을 처음 사용하여 독립선언한 날은 1776년 7월 4일이다. 그 후 약 8년간에 걸친 싸움 끝에 1783년 9월 3일에 비로소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이른바 파리 조약을 거쳐 완전한 독립국으로 인정받게 된다. 독립을 기념하는 날이 1781년이 아닌 1776년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최초로 독립을 결의하고 선언한 날이 바로 기원이자 뿌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게 3.1운동은 독립된 새로운 나라를 선언한 최초의 날로 우리의 독립선언일이다. 1910년 대한제국이 망하고, 한국은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편입된다. 1차 세계대전 승전국이 된 일본 헌병과 군사 강점 하에 놓인 국내에서는 독립운동을 할 여력이 없었다. 그런데 독립선언의 불꽃이 기적처럼 점화된다. 만주에서는 대한독립선언서가, 적의 수도 도쿄에서는 2.8학생독립선언이 터져 나온다. 해외와 국내간의 긴밀한 연락에 이어 마침내 1919년 3월 1일에 서울에서 기미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대한독립만세의 물결이 전국으로 퍼져갔다. 그해 3월부터 5월까지 한반도는 우리 역사상 가장 장대한 거국적 항쟁의 물결과 희생의 피바다를 이루게 된다. 시위에는 한국인 전체의 10분의 1 이상인 200만이 넘었고, 일제의 학살로 한국인 2만여명이 죽고,부상자는 헤아릴 수 없었으며, 감옥에 갇힌 사람은 5만명이 넘었다. 남녀,연령,지역,계층,종교의 차이를 허물고 동참한 점에서도 유래가 없었다.
 
왕조국가에서 민주공화제로 국체를 변경한 국민적 합의가 분출되었기에 3.1운동은 진정한 의미에서 혁명이다. 이제 새 나라 체제는 왕조가 아닌 전체 국민이 주권자가 되는 민주공화제로 귀결된다. 1919년 4월 10일 중국 상해에서 29인의 애국지사들이 모여 국가, 국호, 체제, 정부, 헌법에 관한 결정을 한다. 10개조에 걸쳐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그것이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국가, 정부 수립은 1919년에 출범하였고, 1948년에 이를 재건하여, 이후에는 대한민국 체제 틀 속에서, 점진적인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1987년 현행 헌법에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하여, "임시정부"와 "법통"이 명문화 된다.
 
지난 100년의 역사는 반외세 민족운동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민주혁명의 역사이다. 3.1은 외세를 타도하면서 왕조적 전제정치는 걷어내는 민주혁명 1단계 역사이고, 이어 4.19와 부마와 5.18과 6.10은 독재와 군정에 맞서 싸워 승리를 이뤄낸 민주혁명 2단계 역사이다. 그리고 촟불 대연대와 같은 최근 흐름은 국민의 주인됨을 거듭 확인해가는 과정이었다. 3.1과 4.19와 6.10과 촟불의 연속성 속에서 우리는 국민통합을 위한 귀중한 교훈을 갖는다. 특히 3.1혁명은 우리를 가르는 모든 벽을 녹여낸 민족 전체 대통합의 용광로였다. 각종 분열, 혐오, 장벽들에 시달리는 오늘의 현실에서 3.1과 대한민국 탄생은 우리 민주화와 인간존엄과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 대연대의 가치있는 역사이다. 남·북이 함께 기념할 수 있는 날이 3.1인 만큼, 평화통일의 과제를 자각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목포에서는 1919년 4월 8일 당시 정명여학교,영흥학교,양동교회 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만세운동이 있었다. 필자가 시의원으로 활동할 때 정명여고 양승희 선생님께 제안하고 박찬승 한양대교수(당시 목포대)님의 고증을 거쳐, 2001년부터 18회째 '4.8만세운동 재현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3.1 100주년인 올해는 이 행사가 남북평화통일, 상해와의 교류, 개헌운동 등의 비전을 담은 서남권 주민들의 행사로 발전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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