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래 칼럼 - 호랑이 세 마리
상태바
김학래 칼럼 - 호랑이 세 마리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9.03.06 10: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가 어렸을 적 그러니까 일제강점기 말과 해방직후의 이야기이다.
동네에는 호랑이 세 마리 이야기가 번지고 있었다. 순박한 농민들을 울리는 호랑이들이었다.
그 첫째는 순사였고 둘째는 산감 셋째는 밀주단속꾼이었다.

순사는 지금의 경찰관이었다.
오늘날에는 민주경찰이란 구호가 눈에 띄는데 그 옛날에는 민주경찰이 아예 없었다. 국민들을 억압하고 겁주고 수탈하는 작은 폭군들이 순사였다.
그러기에 애기가 울음을 안그치면 순가가 온다며 겁을 주었고 그렇게 하면 애기 울음이 그친다는 것이였다.

두 번째 호랑이는 산감이였다. 군청의 산림과 직원이였는데 마을에 산감이 나타났다하면 마을은 활짝 뒤집혔다.
소나무 가지가 땔감으로 쓰였기에 집집마다 생소나무가 숨겨져있었다.
산감이 적발을 하면 벌금이 나왔기에 농부들은 소나무 가지 흔적을 없애기에 뛰어다녔다. 그러나 집안에 들어온 소나무 가지를 없애기는 극히 어려웠다.
산림녹화를 위한 시착이었겠지만 당시 산감의 행차는 호랑이 출현보다 무서운 일이었다. 이제는 산림녹화 표어는 없어졌다. 산감도 역사의 괴물이 되었다.
가스와 전기로 식품을 조리도 하고 난방을 하는데 솔가리가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세 번째 호랑이는 밀주단속반이었다.
옛날에는 농민들은 밀주를 빚어 마셨다. 그런데 밀주는 금기물이었고 단속 대상 이었다. 밀주단속반은 민중설지의 주조장 직원이였다. 밀주가 선행하면 주조장의 탁주가 안 팔리고 대금이 깎이기에 주조장의 호랑이들은 마을을 급습하고 밀주를 적발했다.
밀주단속반이 나타나면 조용하면 마을에는 쏘가 벌어졌다. 벌금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순박한 농민들은 생솔가리에 울고 밀주 때문에 울었다.

농민들을 울리고 떨게하던 호랑이들은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는 전설같은 이야기이다.
항의 한 번 못하고 불쌍하게 당하기만 했던 그 옛날의 우리 농민들. 이분들은 평생 울면서 살아왔고 한 맺힌 인생을 보였다.
호랑이 세 마리 이야기도 우리 조상들에게 설움과 한을 심었던 역사의 악령들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