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노래 - 이철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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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노래 - 이철호 칼럼니스트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9.05.2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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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진다/바람은 넘실 천이랑 만이랑/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라고 시작하는 “오월”은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더불어 봄과 오월을 노래한 영랑 선생님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한적한 로마 시내 보르게제 공원을 자동차로 달리다 괴테의 동상을 발견하여 잠시 쉬어간 적이 있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로마에 머물렀다는 사실에 놀랐고 “오오 눈부시다/자연의 빛/해는 빛나고/들은 웃는다….”라는 ‘오월의 노래’를 여행이 끝난 후 음미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찬란한 오월과 자연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대여 영원히 행복하여라/나를 향한 사랑과 더불어”라는 시의 종장부를 보면 오월보다는 인간에 대한, 특히 프리드리케에 대한 사랑을 쏟아붓고 있음이 분명하다.

오월! 그리고 봄은 정녕 아름답다. 남녘엔 아직도 유채꽃이 너울대고 너무 진하지 않은 신록은 단비를 맞을 채비를 진작에 끝냈다. 며칠 전 황토땅 해남을 다녀오면서는 바람도 손이 있음을 알았다. 바람의 손길은 야하게도 보리가 그 허리통을 부끄럽게 드러내도록 매만지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 아름답지 못했던 오월이 있었다. 꿈꾸듯 꿈꾸듯이 흘러 가버렸으면 좋으련만 80년 서울의 봄, 그 오월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유신체제의 붕괴로 맞게 된 ‘서울의 봄’의 운명은 이미 ‘생일집 잔치’란 암호명이 붙은 12·12 쿠테타로 잉태되었다. 비극적인 광주의 대 도륙작전을 그들은 어이없게도 ‘화려한 휴가’라고 명명하였단다.

필자의 학창시절에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전진가’ 등 단조풍의 행진곡이나 민중가요와 함께 봄을 살았다. 이들 노래와 시가 갖는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은 젊은 층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시키는 인화성 물질이라서 당국은 노래도 마음대로 부르질 못하게 했었다. 대차고 올곧기로 유명한 김남주 시인은 ‘꽃이여 피여 이름이여’,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장난’ 등의 시를 쓰며 아예 광주를 중요한 시 소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광주가 모든 이의 광주로 남기 위해서는, 또 영령들의 넋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비폭력 시민 정신과 평화주의를 길이 빛내기 위해서는 광주를 광주의 손아귀에서 풀어놔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아주 오래전에 했었다. 어떤 이유로든 참배를 막아서는 아니 되며 그들로 하여금 뭔가를 느끼고 돌아가게 하여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다행히 5·18 기념일이 성년을 넘기면서 국내외 각계인사들의 참배가 줄을 잇고 참배 분위기 또한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모두가 마음을 다해 노력한 결과가 아니었는가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일부에서 불거지고 있는 사태를 보면서 세월이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심히 우려된다. 5·18과 관련한 시대착오적이고 험한 발언들이 정치권 일각에서 횡횡하고 있다. 정치가 백성을 편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라면 이런 말들은 그 기준에서 너무 멀리 간 건 아닐까? 어떤 이유로든 참배를 막아서는 안된다고 믿었던 필자의 옛 생각이 너무 순진했었는가 보다. 다른 한쪽 진영에서 보기에는 매우 못마땅한 생각이라고 여기기에 충분하였겠구나 자성하고 있다.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자들이 어떤 정치적 목적이나 복선을 깔고 있는지는 저승의 영혼들이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다만 그들을 욕되게 하였다는 세간의 평가가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우리가 견해를 달리하면서 타박질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훌륭한 언어로 오월과 봄을 노래한들 이런 말 한마디로 그 아름다움을 망친다면 과연, 산 사람들의 도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논하기에 앞서 인간성 회복을 주문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암튼!! 잠시라도 이런 논쟁에 비켜서서 여전히 아름다움을 뽐내는 오월과 이 봄을 온전히 만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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