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주년 5.18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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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주년 5.18 민주화운동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9.05.2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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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속 드러나는 목포 5.18 민주화운동 진실들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된 5·18 민주화운동 제39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기념식에서 39년 전 고등학생 아들을 잃은 노모의 사연이 소개되자 행사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에도 눈시울을 적시는 시민들이 많았다. 문 대통령은 “공권력이 광주에서 자행한 야만적 폭력과 학살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대표해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5·18의 진실은 보수·진보로 나뉠 수 없다.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라고 강조한 부분이다.

정부에서 5·18 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일을 적극적으로 기념하면서, 용기 있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오월의 진실과 참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 목포에서 일어났던 5·18 민주화운동도 재조명을 받고 있다. 고 이준규 전 목포경찰서장의 시위대 진압 거부 등이 집중 재조명됐다. 또, 1980년 오월 효천역 인근에서 자행된 진압군의 민간 버스에 대한 무차별 총격도 그 중 하나였다. 이곳은 목포에서 나주 목포방면으로 나들었던 진출입 장소이다.

광주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시 나주시 남평 호혜원에서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했던 폴 코트라이트(63) 씨는 최근 광주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1980년 5월 21일 자전거를 타고 광주로 오던 중 효천역 인근에 수많은 총탄 흔적과 핏자국이 있는 버스 세 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민간 버스가 옆으로 넘어져 있고 헤드램프 위에는 붉은 글씨로 ‘계엄’이라고 적힌 모습 등을 촬영한 사진을 처음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항쟁 기간 5월 26일까지 광주에 머물며 외신 기자 통역과 상무관 시신 수습 등을 도운 그는 헬기 사격에 대해서도 “상무관에서 활동하며 손주를 잃은 할머니 등 여러 시민으로부터 ‘헬기에서 총을 쐈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밝혔다.

5·18 당시 상당수의 사망자가 광주 국군통합병원에서 소각 처리됐다는 증언도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당시 주한 미군 정보 요원이었던 김용장 씨는 그제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가매장한 시신을 재발굴해 일부는 국군통합병원에서 소각했다는 첩보가 있었다”고 밝혔다.

505 보안부대 특명부장을 지낸 허장환 씨도 “보안부대에서 지문 채취를 마친 희생자 사체들은 대부분 국군통합병원에서 소각 처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김용장 씨는 특히 “계엄군의 집단 발포 직전인 1980년 5월 21일 전두환이 K57(제1 전투비행단) 비행장에 와서 정호용 특전사령관, 이재우 505 보안대장 등과 회의를 했고, 당시 회의에서 사살 명령이 전달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증언한 계엄군의 민간 버스에 대한 무차별 총격과 민간인 희생자 시신의 무단 소각은 새롭게
확인된 사실로, 당시 신군부의 잔혹성과 진실 은폐를 위한 치밀함을 보여 준다.

전두환의 집단 발포 전 광주 회의 참석 증언도 발포 명령자 규명을 위한 귀중한 단서다. 여기에 목포에서 벌어진 목포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실도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다. 당시 광주에 이어 목포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시민군이 목포에 내려온 사실 등이 나오고 있다.
5·18 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라 앞으로 꾸려질 진상조사위원회가 하루빨리 출범돼 목포에서 발생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철저한 규명이 돼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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