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교수의 맛으로 읽는 남도인문학 - 2 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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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교수의 맛으로 읽는 남도인문학 - 2 민어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9.05.2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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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 자산어보가 인정한 조선백성들의 여름철 최고 보양식
▲ 목포 사람들의 여름철 보양식 민어회

[목포시민신문=김대호전문시민기자]5월 말인데 벌써 폭염주의보다.
푸르름을 더해가던 녹음도 무더위가 밀려오면 성장을 멈추고 입을 말아 자신을 보호하고자 한다. 용맹스럽던 맹수들까지 혀를 내밀고 거친 숨을 몰아쉰다. 이러다 대한민국은 여름과 겨울만 남겠다. 하물며 사람은 또 어찌하겠는가.

더운 여름, 더위 먹은 술꾼들이 술은 마셔야겠고, 체력은 고갈이 되어 방전되어 입맛까지 바닥일 때 찾는 곳이 있다. 보양도 하고 술도 마실 수 있는 곳이 목포 만호동 민어골목이었다. 겨우내 선창 주변 우럭간국과 복집을 전전하던 이들의 새 안식처였다.

민어는 두껍게 썬 속살에 집 된장, 참기름, 마늘, 통깨 버물려 만든 소스에 뒤집은 깻잎으로 싸 먹어야 제 맛이다. 자신의 향을 드러내는 다른 소스와 달리 된장이 민어를 만나면 자신을 숨기고 회의 맛과 향을 드러나게 한다. 초장이나 고추냉이는 아니다.

민어회도 별미지만 속살이 살아 움직이는 민어전은 또 어떤가? 싱싱한 선어여야만 가능한 맛이다.
민어는 수컷이 맛이 좋고 가격도 비싸다. 암컷은 알로 영양소를 빼앗기기 때문인지 살이 푸석거리지만 수컷은 육질이 찰지고 단단하며 고소하다. 민어는 버릴 것이 없다. 지느러미와 가시를 빼곤 다 먹는다. 부위별로 알고 먹으면 한 번 먹고 백가지 풍미를 즐길 수 있다.

민어의 백미는 배진대기라고 부르는 뱃살이다. 껍질과 지방, 육질로 이뤄진 삼겹살로, 단단하고 기름진 것이 다른 부위에 비해 묵직하고 깊은 맛이 난다.

그 다음이 단백질 덩어리 부레다. 목포에서는 '풀'이라고 부른다. 이름처럼 옛날에는 최고의 천연 접착제인 아교의 재료로 쓰였다. 민어가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내는 '부~욱 부~욱' 소리는 부레의 팽창으로 인한 것이다. 껌 한통을 통째로 씹은 듯 입안에서 씹히는 식감이 이색적이다.

배진대기, 부레, 껍질, 아가미…버릴 것 하나 없는 민어

껍질 맛도 일품이다. 껍질을 팔팔 끓는 물에 바로 담갔다가 건져내 얼음물로 식힌 다음 신안 천일염에 참기름 부어 섞은 양념에 찍어 먹는다. 아가미도 한 몫 한다. 아가미를 칼로 다진 다음 역시 다진 마늘과 고추를 양념과 버무려 먹는다.

민어의 속살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맛이 좋다. 살구꽃인양 연분홍 속살을 살랑거린다. 육질이 찰지고 쫀득쫀득하지만 입안에 들어가면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는다.

민어어란은 숭어어란과 전혀 다른 질감의 기름짐이다. 입안에 굴러다니는 민어의 알들은 깊고도 담백하며 깔끔하다.

민어의 탕은 탕 중의 으뜸이다. 전라도에서는 우럭과 돔, 보양탕도 민어탕 다음으로 친다. 여름에는 민어의 '부레', 겨울에는 홍어의 '애'가 최고의 탕을 만드는 식재료다. 신안군 임자도에는 상사병에 더위까지 먹어 죽어 가던 총각이 쌀뜨물로 끓인 민어 지리탕을 먹고 벌떡 일어났다는 전설 같은 얘기도 있다. 민어탕은 여름더위에 기운을 차리지 못하는 노인들이나 성장통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특히 좋다.

머리와 내장, 뼈를 섞어 매운탕을 끓이면 사골국물처럼 찐득찐득하다. 일찍이 전라도에서는 산모들의 산후조리에 민어를 고아 먹였는데 자궁을 빠르게 출산 전으로 되돌린다고 한다. 몸은 보하고 살은 찌지 않은데다 피부미용에 탁월하기 때문에 여성들의 선호도가 높다.

예전 같지 않은 민어골목, 술꾼들 떠나고 관광객들로 채워져

그런데 요즘 목포식객들이 민어골목을 한 둘씩 떠나고 있다. 목포식객들의 자리는 대신 인터넷 맛집 포스팅을 보고 찾아 온 외지관광객들이 차지했다. 나 또한 최근 들어 한두 번 가보았는데 분명 예전의 그 맛이 아니었다. 특히, 전국적인 맛집으로 알려진 나의 오랜 단골집들이 그랬다. 이런 경우 주인이 바뀌었거나, 이익을 위해 단골보다는 뜨내기손님으로 눈을 돌린 탓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내 입맛에 문제 생긴 것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옛 맛은 사라져도 민어골목은 다시 찾지 않을 사람들로 넘쳐난다.

▲ 민어전, 바삭거리며 입안에서 부서지는 참을 수 없는 고소함

민어는 살을 도톰하게 져며 한입 가득 넣고 오물오물 씹어 먹어야 맛이 있다. 그런데 양을 늘리기 위해 대패민어를 내어 놓거나 양배추를 수북이 쌓는 경우도 있다. 살이 단단하고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며 고소한 맛이 입안에 고이면 제철 여름민어가 분명하지만 살이 흐믈거리거나 퍽퍽하면 값싼 겨울 암민어를 냉동해 놓았다가 해동해서 쓰는 것일 수도 있다. 일부 양심불량들은 깐깐한 목포사람이 아니면 중국산 큰민어나 점성어를 올리는 경우도 있다. 이 정도만 알고 가서 썰을 풀어도 주인장 대접이 달라질 것이다.  

민어는 임자도 바다 연안 여름 모래톱에서 자란 숫민어가 으뜸이다. 지도 송도나 압해도 위판장에 직접 나가면 싸고 맛난 제대로 된 민어를 구할 수 있다.

인스턴트 음식으로 내몰리는 현실 안타까워

▲ 숭어와 전혀 다른 질감의 기름진 민어어란

200여 년 전 흑산도로 유배 간 정약전. 본인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지만 정약전의 유배는 세계 최초의 해양생물도감인 <자산어보(玆山魚譜)> 탄생의 계기가 되었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민어는 흑산도 바다에는 희귀하나 간혹 수면에 떠오르고 간혹 낚아서 잡는다. 나주(羅州)의 여러 섬 이북에서는 5~6월 그물로 잡고, 6~7월 낚시로 잡는다.”고 하였다. 나주의 이북 섬이 바로 신안군 임자도와 영광군 낙월도다. 예전에는 임자도 전장포에 파시가 열려 그 곳으로 모였으나 지금은 지도 송도위판장으로 인근의 모든 민어가 밀려든다.

정약전은 민어의 맛에 대해서 “맛은 담담하고 좋다. 날 것이나 익힌 것이나 모두 좋고 말린 것은 더욱 몸에 좋다. …(중략)… 알주머니는 길이가 수 자에 달한다. 젓갈이나 어포가 모두 맛이 있다.”고 하였다. 모든 생선이 그렇듯 민어도 산란기가 가장 맛있다. 7~9월이 되면 민어는 람사와 유네스코가 공인한 신안군의 청정갯벌과 임자도 전장포 인근 모래톱을 회유하며 황석어와 게, 새우 등으로 몸을 살찌운다. 큰 것은 1미터가 넘는다. 간혹 물위로 고개를 배꼼이 내밀고 '부~욱 부~욱' 부레를 진동시켜 사방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이 소리가 울려 퍼지면 미식가들은 애가 탄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목포사람들의 여름 건강식이었으나 바다모래 채취 등으로 산란장이 파괴돼 개체수가 준데다 그 소문이 알려지면서 가격이 올라 지금은 귀하신 몸이 되었다. 
민초들의 보양식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인스턴트 음식으로 내몰리는 현실이 안타깝다.
김대호 전문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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