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시 한의사회 총무 온성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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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 한의사회 총무 온성만 원장
  • 최지우
  • 승인 2012.11.1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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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과 뜸으로 펼치는 사랑의 인술

▲온성만 제중당 한의원장

서남해안 최초 섬마을 한의원 개원
매주 소외된 이웃 찾아 무료진료도

훤칠한 키에 선한 눈으로 환자들의 고충을 들어주며 혈맥을 찾아 투박한 손으로 침을 놓는 제중당 한의원 온성만 원장에게는 특이한 이력이 있다.
육지와 떨어져 있는 의료사각 지대인 섬에 맨 처음으로 한의원을 개원 섬주민들에게  한방치료의 혜택을 받게 했다.

이 지역의 젊은 의사 온성만원장(목포시 한의사회 총무)을 만나 그만의 특별한 인생철학을 들어봤다.
“대학 졸업 후 처음 의사생활을 목포에서 했습니다. 원장님이 꾸준히 섬으로 무료진료 봉사를 다니더라구요. 1박2일 섬마을 무료 진료를 같이 다니면서 섬 주민들이 진료오길 기다려 진료를 받는걸 보고 육지보다 섬에 계신 분들의 한방치료가 더 필요하겠구나 생각 했습니다. 여러 섬을 돌아보며 마땅한 곳을 찾다가 첫 개원을 안좌라는 섬에서 했습니다”라며 섬과의 특별한 인연은 측은지심 이였다고 했다.

전도양양한 젊은 의사가 다들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섬으로 들어간다고 하자 주위의 반응은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결혼도 하지 않은 혼자 몸으로 고향도 아닌 목포에서 더 멀리 들어가야 하는 섬 생활 시작은 모험심 가득한 온 원장의 성격에도 불안스러웠다.

하지만 따뜻한 섬 주민들의 환대와 넘쳐나는 환자들을 보며 안도와 보람과 긍지를 느꼈다고 한다.
지금은 섬마다 한의원이 개원해 있지만 온 원장이 섬에 개원했을 때는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섬마을 한의원 이였고 서남해안 인근에서는 처음 개원하는 한의원이라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침 치료나 뜸 치료를 원하던 섬 주민들은 배를 타고 멀리 육지까지 나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고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치료를 받을 수 있어서 잘 생긴 총각 의사선생님을 많이 챙겨주었다고 한다.

지금은 비록 섬을 떠나 목포에서 정착하고 있지만 항상 마음 한 곳에 따뜻한 안식처로 기억되는 건 그 곳에서 평생의 친구 부인을 맞았고 보물 같은 큰 아들을 얻었기 때문이다.

큰 아들을 낳았을 때 정표를 남기고 싶어 고향에서 가져온 나무를 심어 훗날 아이가 커서 다시 찾아볼 수 있도록 의미를 남겨 놓았다고 한다.
젊은 의사 온성만 원장의 고향은 전주이다.

“1999년 겨울 이곳에 처음 왔는데 함박눈이 많이 내렸어요. 온통 하얗게 변해버린 목포는 무척 깨끗하고 낭만적인 따뜻한 도시로 다가왔습니다. 그땐 이렇게 또 다른 고향이 될 줄 몰랐죠”라며 목포의 첫인상을 회상했다.

“고향에 부모님이 계시는데 멀리 떨어져 있어서 부모님진료를 제대로 못해 드립니다.”라며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을 얘기했다.
과학의 최첨단을 걷고 있는 요즘에도 철 바뀌면 꼭 보약을 챙겨 먹는 사람들이 있고 어르신들이 가장 선호 하는 의료서비스가 침과 뜸 치료라는 통계가 있다.

목포에도 40여개의 한의사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그들이 모여 만든 목포시한의사회가 있다.
목포시 한의사회는 매년 복지관과 시설을 찾아 온종일 무료 봉사를 하고 있으며 순번을 정해 목포시내 노인 복지관과 장애인 복지관을 요일별로 찾아 무료 진료를 꾸준히 진행해 오고 있다.

온 원장은 목포시한의사회 총무를 맡아 지역 내 한의사들의 권익보호와 좋은 이미지제고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온 원장은 한의사가 부지런하고 꼼꼼한 자신의 성격에 잘 맞는다며 앞으로 지역내 소외된 이웃을 찾아 재능기부를 하고 싶다며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한발 한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다고 소박한 소망을 밝혔다.

최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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