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타워(Petronas Twin T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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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타워(Petronas Twin Tower)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2.11.2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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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축사사무소 백재봉

11월의 가을이 다 지나갈 무렵 건축사협회에서 주관하여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와 싱가포르를 다녀왔다. 오후 4시 목포를 출발하여 인천국제공항에 도착 6시간 30여분을 날아가 싱가포르공항에 도착하였다. 싱가포르공항에 도착하여 곧바로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로 향했다.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하니 어느덧 점심식사 시간이 되었다.

말레이시아는 말레이반도 남단과 보르네오섬에 걸쳐있는 국가로 수도는 쿠알라룸푸르이며 동남아에서도 적도 바로 북단에 위치하여 남쪽으로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북쪽으로 타일랜드, 동쪽으로는 필리핀이 인접해있다.

주민은 말레이계, 인도계가 많고 그밖에 소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식 언어는 말레이어지만 중국어, 타미르어, 영어도 사용된다. 기후는 열대우림형 기후로 한국의 여름 날씨가 1년 내내 계속된다고 보면 된다. 종교는 이슬람교와 불교, 힌두교, 그리스도교가 있으며 1인당 GDP 즉, 1년간 국민 총소득은 2010년 기준으로 보면 8423달러였다.

말레이시아는 입헌군주국으로 국가 원수는 군주로 왕위가 세습되며, 국왕을 상징하는 색은 황금색으로 일반사람들은 황금색과 ‘로얄’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 9개 주가 5년에 한 번씩 임명하며 정부의 장은 수상이다

동남아시아 문화를 이끄는 열대의 휴양 낙원국

아름다운 해변과 크고 작은 섬들, 정글로 뒤덮인 산악지대와 휴양지가 공존하는 곳인 말레이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군정 하에 있다가 종전 후 다시 영국 보호령 말라야 연방이 되었다. 그래서 차량 운전석의 위치가 한국과 반대였다. 1963년 영국 식민지였던 동 말레이시아의 사라왁과 사바, 싱가포르까지 독립 연방국 말레이시아로 되었고 1965년 싱가포르가 분리되어 독립하였다.

예로부터 말레이시아는 중국, 인도, 이슬람 문화와 동남아시아 고유의 문화가 융화, 공존하면서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어서 들어온 서구 문화도 말레이시아 문화의 다양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시차는 한국보다 1시간 느리다. 한국이 정오면 말레이시아는 11시이다.

인구는 한국의 절반인데 면적은 한국의 4배 정도 넓다. 식물성 기름인 팜유와 고무나무산업단지가 세계물량의 63%를 차지하고 있으며 산유국이다. 주석은 세계의 98%를 보유하고 지하자원이 풍부해서 부강한 나라다. 그래서 그 나라는 세금도 거의 없어 게으르고 열심히 살지 않아도 사는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자연재해는 남쪽에 인접한 인도네시아가 막아주므로 태풍이나 쓰나미는 없다. 인적자원이 부족해서 외국인 유입정책이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년 간 외국인 관광객 수가 인구수에 육박한다. 비가 많은 나라이므로 외부세차를 하지 않아도 차가 항상 깨끗하다.

말레이시아의 대표적 상징건물인 페트로나스타워(Petronas Twin Tower)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페트로나스타워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타이틀을 잠시나마 가졌던 곳으로, 처음부터 이와 같은 타이틀을 목표로 삼았던 건축물 중의 하나다.
페트로나스타워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당연히 그 거대한 규모에 있다. 88층으로 구성된 이 쌍둥이 타워는 말레이시아의 석유회사인 페트로나스의 본사로 두 타워 중 한 채 전체가 본사 건물이다. 위로 갈수록 점점 작아지는 모양의 두 타워는 지상에서 170미터 높이에 있는 41층과 42층 사이에 난 58미터 길이의 ‘스카이브릿지’로 연결된다.

아르헨티나 태생의 미국 건축가 세자르 페리가 디자인한 이 타워는 대부분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졌다. 이슬람 미술에서 볼 수 있는 모티브를 기본으로 하고, 외부마감은 전체적으로 스텐인레스와 유리로 마무리 되었다. 이는 말레이시아가 무슬림 국가임을 반영하는 디자인이다. 

이 빌딩은 수도를 상징하고, 1관은 일본이 2관은 한국의 삼성과 극동건설이 시공, 반년 차이로 한국이 늦게 공사를 시작하였다. 한낮의 무더위를 피해 야간에 공사를 진행하였으며 88층 위 피뢰침은 한국이 먼저 시공을 완료하였고 ‘스카이브릿지’도 한국이 시공하였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한국이 시공한 것으로 소문이 났고, 이후로 한국의 건설업이 해외건설시장에서 시공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어 해외로 진출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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