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을 감행하는 재능 - 윤소희(작가/'동네산책' 책방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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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을 감행하는 재능 - 윤소희(작가/'동네산책' 책방지기)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9.06.1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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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목포의 책방에서는 독서 모임이 한창이다.

다섯 독립책방이 연대하여 책방 투어 형식으로 하는 모임도 있고, 내가 별도로 진행하는 모임도 있다. 공교롭게도 두 독서 모임의 선정도서가 모두 황현산 선생의 책들이다. 8월이면 선생이 별세하신 지 꼭 1년이 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추모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이렇게 발현되었으리라. 

책방 오픈을 위해 작년 봄부터 공사를 시작한 나는 황현산 선생과의 만남을 특별히 고대하고 있었다. 책방을 오픈하면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마련해야지. 그 첫 번째 주인공으로 황현산 선생을 모셔야지 마음먹고 있었다. 당시 선생은 암 투병 중에도 왕성한 강연 활동과 집필을 이어가고 계셨고, 마침 6월에는 <밤이 선생이다>에 이은 산문집 <사소한 부탁>을 새로 출간하셨기에 매우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나의 고향은 비금도’ 라 주장하시는 선생은 목포 태생이셨고, 목포에 오시는 걸 좋아하시는 듯 했으며, 마침 목포나 제주에서 무료 강연이나 낭독회를 하고자 혼자 맘먹고 계시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살인적인 폭염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던 8월. 선생의 별세 소식을 듣고는 가슴이 철렁했다. 책방 공사는 너무 길어졌고 선생은 너무 빨리 가버리셨다. 

든든했던 어른을 잃은 상실감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사소한 부탁>이 마지막이라니. 묻고 싶은 질문이 많았는데. 듣고 싶은 말씀이 아직 많았는데.

황현산 선생은 나를 각성시키는 존재였다. 질문하지 않았으나 답을 주는 존재였고, 그 답이 다시 질문이 되게 하는 존재였다. 사람들이 종교를 갖거나, 고전을 읽거나, 성현들의 말씀을 새기며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황현산 선생은 그저 훌륭한 문장가만은 아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함께 고민하고, 논의하고, 비통해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존재. 말하자면 지극히 현재적 존재로서의 어른이었다.

목포가 아직 낯선 내게는 친절한 가이드이기도 했다. 유달산과 삼학도가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얼마나 아찔한 아름다움을 가진 곳이었는지, 섬사람들의 일상이 어떤 식으로 삶과 죽음에 밀착해있는지. 목포의 옛이야기를 자분자분 들려주는 다정한 어른이었다.  

독서 모임에 참가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선생의 목소리에 기꺼이 귀 기울여 얻은 갖가지 사유들을 쏟아냈다. 이제는 우리가 어른이 될 차례라는 자각도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어린아이에게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몸소 허리를 굽혀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사람이다. 황현산 선생의 말씀을 빌리자면 “그 일을 감행하는 재능”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독서 모임도 하나의 감행이라면 그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 책을 읽고 배우고 공감하고, 다른 이의 의견을 통해 사고를 확장시키는 것. 물론 그것만으로도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거기에 더 보태어, 황현산 선생의 책들은 궁극적으로 실천을 요구한다. 그 일을 감행하는 재능. 결국 행동으로 나아가는 지점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책을 읽으며 쌓인 지식을 열거하거나, 무성한 말의 성찬으로만 끝나는 독서 모임은 지양하고 싶은 이유다. 선생의 말씀을 다시 새기며 다음 주의 독서 모임을 겸허하게 기다린다.

<책 한 줄 읽지 않고도 모든 것을 다 아는 우리들은 “산다는 게 이런 것이지” 같은 말을 가장 지혜로운 말로 여기며 살았다. 죄악을 다른 죄악으로 덮으며 산 셈이다. 숨 쉴 때마다 들여다보는 핸드폰이 우리를 연결해주지 않으며, 힐링이 우리의 골병까지 치료해줄 수 없으며, 품팔이 인문학도 막장드라마도 우리의 죄를 씻어주지 않는다. 실천은 지금 이 자리의 실천일 때만 실천이다.> (황현산, 『우물에서 하늘 보기』, 삼인, 2015,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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