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를 사랑한(?) 시인 (1) - 박찬웅 칼럼니스트
상태바
돼지를 사랑한(?) 시인 (1) - 박찬웅 칼럼니스트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9.09.18 10: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목포시민신문] 요즘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요리사가 각광받는 직업으로 떠오르면서 많은 유명인 들이 프로요리사 못지않은 요리 실력으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는 예가 많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탈리아의 예술가이자 과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예술이나 과학 못지않게 요리를 좋아해 많은 요리를 개발하기도 하고 직접 음식점을 개업해 오너 쉐프로 활약하기도 했고 요리책도 써 낼 정도 요리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고 한다.

중국에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못지않게 요리를 사랑하는 유명인이 있었으니 그가 중국 최고의 문장가이지 정치가였던 소동파다. 북송(北宋)시대 쓰촨성 출신으로 원래 이름은 아이러니 하게도 소식(?)이다. 그가 당나라와 송나라 500년을 통틀어 가장 글을 잘 쓰는 8명(당송팔대가)중에 아버지 소순, 동생 소철과 함께 들어갔다고 하니 얼마나 대 문장가인가, 그는 시문과 서예, 그림뿐 아니라 특히 건강식과 요리에도 연구가 깊고 미식가로도 유명했다.
 
소동파하면 중국 저장성 항저우(항주)와 돼지를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이다. 지금도 항저우에 가면 도시 곳곳에 소동파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곳이 서호다. 서호는 항주 도심에 있는 인공호수인데, 중국지폐 1원에 뒤편에 새겨질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항저우 지사로 부임한 소동파가 폭우로 침수피해를 입은 민생을 구제하고, 소제라는 제방을 쌓아 서호를 만들고 홍수를 막아, 백성들이 감사해하고 그 덕을 칭송했다고 하는데, 이때 평소 소동파가 돼지고기를 즐겨한다는 것을 안 백성들이 돼지고기를 선물하자, 그 고기를 혼자 먹지 않고 네모나게 잘라 찜통에 넣고 간장 양념을 해서 쪄서 그 요리를 백성들과 두루 나눠 먹었다 한다. 백성들은 홍수를 막고, 항저우를 잘 다스리고, 맛있는 요리까지 만들어주는 소동파의 유능함과 덕을 기린 백성들은 요리를 소동파의 호를 따서 동파육이라고 이름 짓고 항저우의 대표요리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탄생한 동파육이 나중에는 소동파에 발목을 잡게 되는데. 그의 정적들이 “소동파가 백성들에게 동파육을 강제로 팔아 이득을 챙기고 있다”고 모함을 해서 지금의 하이난(해남도)으로 오랫동안 유배를 떠났다가. 유배가 풀려 성경하는 도중에 죽음을 맞았다고 하니. 동파육은 소동파에게는 명성과 몰락을 함께 선사함 셈이다.
 
서동파의 개발한 돼지고기요리는 강소성 서주지방에서는 홍소육, 회증육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저장성 항주, 상해지방에서는 동파육이라고 불리우는데 상차림에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돼지 삼겹살이나 오겹살에 술, 간장, 향신료를 넣고 장시간 수증기로 찌고, 양념에 조려낸다. 소동파는 이러한 요리법을 시로 지어 남겼는데 그 시가 “식저육”이다.
 
지금이야 많은 사람들이 직접요리를 해먹거나, 사람들을 초대해 삼겹살도 굽고, 매운탕도 대접하기도 하고, 요리사란 직업이 예전과는 다르게 우대도 받고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으로부터 1천 년 전 중국에서 그것도 천하제일의 문장가이자 대학자이면서 현직 고위관료가 직접 돼지고기를 가지고 요리를 개발하고 그것을 일반백성들과 두루 나누어 먹었다는 것은 사노공상의 철저한 신분제와 남녀 역할에 분명한 차별이 존재하던 시대에 소동파 요리사랑은 현대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극히 파격적인 행보를 일수밖에 없다.
소동파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요리에 대한 사랑과 열정를 보고 있으면 신분고하도 남녀성별도 동서의 지리적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요리는 “인간이 만드는 최고의 산물”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