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 선생님
상태바
윤치호 선생님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9.10.30 15: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승 세상사는 이야기
박승 향토사학자
박승 향토사학자

[목포시민신문] () 윤치호 선생님 탄신 110주년 기념식이 지난 1018일 목포신안비치 호텔에서 각계 지도자와 ()윤치호 선생님을 추모하는 많은 시민들이 모여 성대히 거행되었다.

() 윤치호 선생님은 1909년 전남함평에서 태어나 마틴 선교사의 전도로 기독교에 입교하여 목포로 와서 전도사교육을 받고 전도사 생활을 하던 중 일제치하의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을 보게되어 이 아이들을 돌볼 생각을 하고서 목포시내의 한시냇가 다리 밑에서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을 불러 모아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을 시작 하였다. 이때가 1928년 목포공생원의 시작이다. 굶주린 아이들은 하나 둘씩 다리 밑으로 모여들었다. () 윤치오 선생은 기독교계 친지와 평소 가까이 지내는 친지들을 찾아다니면서 모금을 하여 아이들을 입히고 먹였다. 아이들이 많아져서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날들이 많아 조선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의 도움은 미약 하였다.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기위해서 노래를 가르치기 시작 했다 그러나 윤치호선생의 노래실력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마틴 선교사가 당시 정명여학교 음악선생으로 재직중인 다우치 치즈코 일본인 여자 음악 선생님을 소개해 주었다. 일본인 음악선생님은 당시 조선총독부 관리의 딸로서 선뜻 수락하기가 어려웠으나 마틴 선교사와 학교 교장선생님의 권유로 수락을 하였다. 다우치 치즈코 선생님의 도움으로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생활이 시작되었으며 윤치오 선생의 희생과 봉사정신에 일본인 여자음악 선생님은 매료 되었다.

또한 일본인 여자음악 선생님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지도하시는 모습에 감명을 받은 윤치호 선생은 일본인 여자음악 선생님께 청혼을 하였다. 청혼을 받은 음악선생님은 조선총독부 관리인 아버지에게 윤치호 선생의 청혼 사실을 말씀드렸으나 아버지로부터 거절 당하였다.

조선인 이며 거지대장인 청년을 사위로 받아들이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음악선생 다우치 치즈코는 단념하지 아니하고 계속하여 부모님을 설득하여 결혼을 승낙 받고 1938년 윤치호 선생님과 결혼하여 한국이름 윤학자로 개명하여 한국인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윤학자 여사의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한국인 부모 같으면 승낙 했겠는가?

이후 공생원은 원아가 400명을 넘었으며 뜻있는 사람들의 후원과 일부 일본인들의 후원도 있었다. 이후 공생원은 어려운 가운데서 새로 원사도 마련하고 사회복지시설로서 자리를 잡아갔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6.25전쟁이 휴전된 다음해 윤치호 선생님은 당시 광주시에 있는 전라남도청에 공생원 지원을 협의하기 위해 출장을 갔는데 행방불명이 되었으며 이 시간 현재까지도 누가, ,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이후 윤학자 여사 혼자서 공생원을 운영했다. 윤학자 여사는 일본의 친지와 각 기관에 후원을 요청하여 운영하였으며 우리정부에서도 적극 후원을 하였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3000여명의 고아를 길러낸 공로를 인정한 한국정부는 19638월 문화훈장을 수여하였으며 일본정부도 196712월에 남수포장, 5등보관장을 수여하여 윤학자 여사의 평생의 공적을 기리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윤학자 여사는 1968년 고인이 되었으며 목포시는 목포시민장으로 장례를 치루었으며 장례식장에는 3만여명이 윤학자 여사를 애도 하였다. 필자는 7세 때에 필자의 부친의 사무실에서 윤치호선생님을 자주 뵈었다. 항상 인자하신 모습으로 필자의 부친 사무실에 오셔서 쉬어 가시기도하며 후원금을 받아가셨다.

윤치호선생님과 필자의 아버님은 친구 사이였다. () 강대홍 변호사님. () 최향춘 선생님(최영철 국회 전 부의장 아버님)은 필자의 부친과 함께 친구로 지내셨으며 세분이 매달수입에서 일정금액을 갹출하여 후원금으로 드렸다.

그리고 윤치호선생님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였다. 윤학자 여사가 고인이 되신 이후 목포공생원은 아들인 윤 기씨가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많은 후원단체가 결성되어 있으며 UN 세계 고아의 날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윤치호, 윤학자 부부와 같이 어려운 이웃과 헐벗고 굶주린 고아들을 돌보는 천사와 같은 훌륭한 인물들이 대한민국에 가득한 날이 오기를 기원 한다.

 

목포문화원 향토문화 연구위원

목포 복음교회 장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