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숙 칼럼니스트] 집고양이 래리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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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니스트] 집고양이 래리의 비극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9.11.0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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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니스트
김인숙 칼럼니스트

[목포시민신문]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집고양이가 길고양이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는 결코 꺼내고 싶지 않았던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둔 이야기이므로 쓰는 내 속이 강렬하게 매스꺼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고양이 이름은 래리였다. 친구의 고양이로 회색 털뭉치같은 작은 고양이를 사와서는 매일 자랑을 하고 예뻐 미치겠다고 했다. 페르시안친칠라라는 회색 장모종인 고양이는 당연히 예뻤고 성격도 상당히 사랑스러워 강아지처럼 친구를 따랐다. 래리는 무럭무럭 잘 자랐고, 금방 성묘가 되었다. 혼자 살던 친구는 그즈음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나이가 제법 있던 두 사람은 금방 결혼을 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아이가 바로 생겼다. 출산일이 임박해왔을 무렵 래리를 친정시골집에 보냈다. 사람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맡길 곳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고양이 분양 샵에서 태어나 친구의 집에서 살았던 것이 전부였던 한 살짜리 집고양이 래리는 영문도 모른 채 시골마당에 덩그러니 놓여졌다. 친정엄마는 고양이에 대해 전혀 이해가 없었고, 다른 동네고양이들처럼 마당에 풀어놓고 지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래리는 처음으로 맡아본 시골의 흙냄새가 잠깐 좋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골마을에서 원래 살던 고양이들에게 생김이 다른 털복숭이 래리는 철저한 이방묘였을 것이다. 래리는 점점 마당에서 더 멀리 쫓겨 다녔고, 어떤 날은 며칠 만에 모습을 나타나기도 했다. 그때마다 래리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털복숭이 페르시안친칠라는 털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품종묘 였고, 여기저기 싸워 다친 상처는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친구는 친정엄마에게 래리의 안부를 물으면서도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사람아가 때문에 래리를 당장 데려올 수 없다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갖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래리는 상태가 심각해졌을 때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래리의 이야기를 듣고 병원에 갔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사람들도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꼴이 말이 아니었다. 래리의 몸에서는 썩은 내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친구는 군데군데 털이 빠지고 푸석거리는 털 뭉치 래리를 안고 울고 있었다. 래리는 어디서 다쳤는지 오른쪽 뒷다리가 심하게 찢어졌고, 제때 치료가 이뤄지지 않아 썩어서 구더기가 생겼고 그 구더기는 래리의 내장까지 파고들었다고 했다. 가는 병원마다 안락사를 권했다. 결국 래리는 안락사를 했다.

래리의 반짝이고 예쁜 커다란 눈빛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았다. 반짝이는 두 눈은 끝내 감기지 않았고, 구더기는 죽은 래리의 장기 안에서 살아있었다. 친구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우울증이 왔다고 했다. 분명한 것은 아무리 울어도, 죄책감에 우울증이 왔어도 래리는 다시 살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끔 집고양이를 어떠한 사정 때문에 더 이상 기를 수 없다는 이유로 카페로 보낼 수 있는지를 묻는 전화를 받는다. 저자가 운영하고 있는 유기묘입양카페는 키우던 고양이가 버려지는 장소가 아니다. 그 어딜 가더라도 처음의 가족을 잊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어떤 이유에서든 집에서 살던 고양이는 길에서 결코 잘 살아갈 수는 없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잘 지내겠지 라는 무서운 짐작은 애당초 잘못된 것이다. 영역동물인 고양이들은 자신의 영역을 목숨 걸고 지켜내려고 한다. 그곳이 자신이 살아가야하는 공간이고 밥을 먹고 쉬는 공간이기 때문에 새로 들어오는 고양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집고양이를 제발 밖으로 보내지 마시길. 그럴 자신이 없다면 고양이를 집 안으로 들이지 마시길.

래리의 눈동자가 유난히 가슴에 박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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