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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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품격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9.11.0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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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희 (작가‧ ‘동네산책’ 책방지기)
윤소희 작가.
윤소희 작가.

[목포시민신문] 목포야행에서 책을 팔았다.

국도1호선 독립영화제에서도 책을 팔았다.

김우진 책방 여는 날에도 책을 팔았다.

대규모 북페스티벌 따위에 비교하자면, 목포의 독립책방들이 거리에 모여 책을 파는 일은 아주 작은 이벤트에 불과하다. 이 작은 이벤트 현장에서 평소의 열 배쯤 책이 팔리는 광경을 매번 목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모처럼의 축제니까 당연한 것이라고. 지나가는 길에 순간적으로 충동구매를 한 것이라고.

하지만 행사가 서너 번 반복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도, 충동구매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겠으나, 뒤늦게 내가 발견한 것은 생각보다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이었다.

책이 진열된 매대 앞을 지나던 사람들은 대부분 가던 걸음을 멈추고 구경을 했다. 혹시 볼 만한 책이 있나 쓰윽 훑어보았고, 좀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한 권 한 권 들춰보았다. 무슨 책이라도 한 권 사고 싶은 사람들은 책방지기에게 책에 대한 이러저런 질문 공세를 펴기도 했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은 반드시 아이 손에 책 한 권 사 들려주고 싶어 했다. 친구나 연인과 함께 온 사람들은 서로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어 했다. 시집을 고르며 엄마에게 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다는 아들도 있었고, 손녀딸에게 보내줄 그림책을 권해달라는 할아버지도 계셨다.

함께 온 일행들끼리 책을 구경하며 서로 책을 권하기도 하고, 책에 대한 설명을 해주기도 하고, 과거에 읽었던 책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기도 하고, 처음 보는 책에 대한 감탄과 호기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책과는 담을 쌓고 지냈었다는 분들이 이제부터라도 책 좀 읽고 싶다며 쉬운 책을 권해 달라고 했다. 책을 사러 서점에 자주 다닌다는 분들 중에는 대형서점에서 잘 보이지 않던 책들이라며 관심을 많이 보이기도 했다. 그런 책들 중에는 대형서점에서 팔지 않는 책들도 있었지만, 팔더라도 워낙 많은 책들 사이에 끼어 눈에 띄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다.

책방을 열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다.

요즘에 책이 팔리나? 나부터도 일 년에 책 한 권 안 사는데.”

대부분 이렇게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책방을 열었고, 책을 사는 사람들을 매일 목격하며 지낸다. 게다가 커피와 음료를 함께 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의 대부분을 책이 차지하고 있다. 책은 서너 권씩 사기도 하지만 커피를 서너 잔씩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목포에 이런 동네 책방들이 생겨서 너무 좋아요.”

책방에 오는 사람들마다 반드시 한 마디씩 감사 표현을 하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누가 감사해야 할지 잠시 어리둥절하다.

책에 대한, 작가에 대한, 독서 습관에 대한 대화 나누기를 즐기는 이들이 이토록 많은데, 도대체 누가 책을 안 읽는다는 건지. 요즘 애들은 책을 안 읽는다고 혀를 차는 어른들의 우려와 달리 책을 좋아하는 학생들을 흔히 만난다.

얼마 전, 책방지기들이 모여 원도심에 공중전화 박스를 재활용한 김우진책방을 만들었다. 개항 거리답게 근대 문학들을 중심으로 도서 1백여 권을 비치했다. 현대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목포 근대 작가들의 책을 선별하며 목포 시민들의 독서 DNA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김우진책방에 관심을 보였다. 책방의 모양새도 예쁘지만 책을 유심히 관찰하며 꺼내 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최근 두어 달 동안 내가 목격한 목포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가끔 상상한다. 책으로 넘쳐나는 문학 도시 목포를. 한 블록 지날 때마다 자그마한 동네 책방이 불을 밝히고 있는 목포. 푸드트럭들 사이로 북트럭들이 즐비한 목포. 사용하지 않는 공중전화 박스가 그 자리에서 책방이 된 목포.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 책 한 권씩 손에 들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흔한 목포.

그런 목포의 풍경을 상상한다. 그런 목포의 품격을 상상한다. 김우진과 박화성과 차범석과 김현이 나고 자라던 그 시절, 목포는 원래 그런 도시가 아니었을까. 아주 먼 상상은 아니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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