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음....악의 평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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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음....악의 평범성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9.11.1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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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동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조준 동신대 교수
조준 동신대 교수

[목포시민신문] 악인은 처음부터 악의를 가지고 악행으로 나아간다고 보는 선악이분법은 어린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만큼 간단하고 편안하다. 한편 우리 주변의 선량한 이웃도 전체주의적 체제나 집단 이데올로기 하에서 맹목적 일상을 통해 거대한 악에 동참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어렵고 불편하다. 범죄자를 악마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자신은 그들과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며 안심한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도 별 죄의식 없이 심각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요구한다. 

196112, 예루살렘의 법정에서 한 남자가 사형판결을 받는다. 그의 죄명은 나치와 그 부역자 처벌법위반, 또는 '생각없음'. 그의 이름은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천 만명의 무고한 남성, 여성, 아이들을 완전히 사멸시킨 악마 같은 죽음의 기계를 고안해내고 유지한 자이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대인 대학살의 전범으로 수배 중에 아르헨티나로 도피하여 이름을 바꾸고 15년 동안 살았다. 유대인 학살의 죄를 저지른 그는 유대인의 나라에서 심판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은 살인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고 항변한다. 자신은 유대인을 죽인 적도 없을 뿐더러 피한방울도 묻히지 않았다며 자신의 죄를 부정한다. “도대체 무엇을 인정하라는 말입니까? 저는 남을 해치는 일에는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제가 관심이 있는 건 맡은 일을 잘 하는 것뿐입니다”. 그가 법정에서 자신의 죄를 부정하며 했던 말이다. 아이히만은 자신을 오직 국가의 명령에 따라 충실히 움직인 관료라고 지칭했다. 살인자들은 광기에 사로잡혀 타인의 생사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우리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는 평범한 관료마인드를 지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에 불과했다. 

1960년 봄 수많은 나라에서 수백 명의 미디어 관련 인사, 기자, 구경꾼, TV 중계진들이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기위해 이스라엘로 몰려왔다. 8개월 동안 지속된 지루한 재판이었다. 재판을 지켜본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은 아이히만을 대해 그는 나보다 더 정상이며 심지어 준법정신이 투철한 국민이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재판을 끝까지 지켜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그에 대해 "그는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다." 라며 유죄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결국 그는 사형판결을 받고 19625월 교수형에 처해진다.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은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 우리는 악을 행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는 아니지만 무의식중에 했던 행동들, 타인에게 상처가 되는 말은 누군가에겐 커다란 상처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국가의 명이라서 또는 자신이 맡은 책무라서 무비판적으로 수행한 것이라도 전쟁범죄에 관여하고 기여한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개별 국가나 민족의 복수나 한풀이에 멈춰서는 안 되며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동대응 차원까지 끌어올려져야 한다.

이번에 전격적으로 재조사가 이루어지는 세월호 사고 역시 생각의 무능, 책임의 회피때문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사건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이라 지칭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 딱 한 사람을 꼬집을 순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었고 누구도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 한다. 책임의 회피, 자신이 한 행동의 파급력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아돌프 아이히만과 다를 이유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난 후 쓴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우리에게 경고했던 글귀를 인용해본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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