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신서의 교육이야기] 수능시험날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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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신서의 교육이야기] 수능시험날의 풍경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9.11.2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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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신서 전 전남 도교육청 정책연구소 소장
하루의 시험으로 평가받는 ‘수험생만의 시간’ 지키기 총동원
성적따라 부모 등골 부담 불구 함께 울고 웃는 진풍경 연출

[목포시민신문] 이번 1114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시험)이 또다시 급작스럽게 몰아친 한파 속에서 실시됐다. 전국 54만여 명의 수험생들은 9시간 가까이 홀로 200여개의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짧게는 고등학교 3학년의 1, 길게는 수년간을, 유치원부터 예비 되었다면 13년간의 긴 시간동안 응축된 지식을 총 동원한다. 모든 수험생들의 성취도는 다를지 모르지만 이 과정을 버텨냈다는 인내심만으로도 수험장에 앉아 있는 이들은 모두 박수를 받을만하다. 전국 86개 시험지구 1185개 시험장에서 작년보다 응시 인원이 46190명 줄어든 규모로 588734명의 학생이 수능시험을 치렀다. 재학생 응시자 수가 39424명으로 지난해(448111)보다 54087명이 줄었다. 반면 재수생 등 졸업생 응시인원은 142271명으로 지난해(135482)보다 오히려 5.0%(6789) 늘었다.

수능 응시 인원은 2010학년도 이후 60~70만 명대를 유지하다 2018학년도 수능 때 처음으로 50만 명대로 줄었다. 학령인구가 줄어든 여파로 재학생 위주로 수능 응시 인원이 준 것으로 보이고 올해가 역대 시험응시자중 가장 적은 수이다. 

전 국가적 시험 대응체제 구축

수능시험일이 되면 시험을 보는 학생 당사자뿐만 아니라 학부모를 넘어 사회전체가 시험을 보는 비상상황으로 돌입할 뿐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변한다.

수 만 명의 경찰과 소방 인력뿐만 아니라 택시 자원봉사까지 대거 투입된다. 학생 수송과 안전사고 등 돌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수험장에 늦은 학생을 태운 경찰은 사이렌을 울리고 교통신호를 무시한 채 시험시간 직전에 수험장에 입실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은 해마다 일어나고 해마다 영웅적인 행위로 그날 저녁 뉴스에 빠지지 않는다. 올해도 경찰청은 경력 1818명을 전국 1180곳 시험장뿐 아니라 수험생과 문제지의 이동 경로, 출제본부, 채점본부 등에 배치한다고 밝혔다. 또 비상연락체계를 구축하고 수험장 인근 경찰서와 112 타격대 차량 및 형사기동차량까지 출동 태세를 유지하도록 했다. 소방당국도 119구급차와 순찰차, 행정차, 오토바이 구급차 등 차량 수백 대를 수험생 긴급 수송에 동원했다.

한국철도는 수험생을 위해 종합안전수송대책을 마련해 운영하였다. 114일부터 실시한 수도권 전철 운행 구간과 전국의 고속 및 일반선로, 주요 시설물의 안전점검을 수능 전날까지 마치고 한파대비 난방 장치를 철저히 정비하고 선로 이상에 대비해 응급복구 대책을 마련했다.

수능 당일에는 정시 운행과 비상 상황 대응에 집중하여 철도교통관제센터를 중심으로 전국 지역본부가 연계해 새벽 5시부터 시험 종료 시까지 특별수송대책본부를 운영하였다.

수능 시험의 출제·검토위원들과 행정 인력 수백 명은 수능 시험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한 숙박 시설에서 시험정보 유출을 막으려는 조치의 일환으로 합숙 생활을 한다. 일단 해당 숙박 시설에 들어가면, 외부와의 접촉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모든 통신기기는 압수당한다.

지난해 지진발생으로 시험이 다시 치러진 경험 때문에 관련 기관은 비상근무 상황을 유지한 것은 당연하다.

11초 차이로 수억 원의 원이나 달러가 오가는 금융시장도 수능 시험일 하루만은 수험생들을 배려한다. 한국거래소는 코스피가 거래되는 증권시장과 파생상품시장을 평소보다 1시간 늦은 오전 10시에 개장한다. 수험생들이 시험장으로 가는 동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은행연합회도 23일 아침 "수험생과 감독관, 학부모 등의 이동으로 인해 교통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 된다"며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까지인 은행 영업시간을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로 바꿨다.

관공서뿐 아니라 일부 민간 기업들도 출근 시간을 한 시간 늦추었다. 교육부는 앞서 수능 시험일 출근 시간을 미뤄달라고 인사혁신처와 산업통상자원부, 지자체 등에 요청했다.

교통체증을 줄이기 위해 회사는 10시까지 출근하고 가게는 오전 10시에 문을 연다.

3교시 영어시험 중에 있는 영어듣기 평가가 실시되는 오후 15분부터 40분까지 국내 전 지역에서 모든 항공기 이착륙이 전면 통제된다. 이에 따라 국제선과 국내선의 운항시간 등이 조정되고 이 시간 비행 중인 항공기는 관제기관의 통제를 받으며 지상으로부터 3이상의 상공에서 대기해야 한다. 시험장 주변을 운행하는 모든 열차는 최대한 천천히 운행해 소음 발생을 줄이고, 사고 등 긴급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경적도 통제하였고 시험장 주변을 지나는 여객과 화물열차의 운행시간도 조정했다.

한국전력은 4천여명의 기술 인력을 배치하여 혹여 있을 정전사태에 대비하고 1천곳 이상의 시험장 전선을 수시 점검한다.

그렇게 친절해 보이지 않아 보이는 언론도 수능 100일 전부터 수험생들의 학습방법, 건강관리 등을 전문가를 동원해 설명해주고 수능 전날에는 챙겨야 할 준비물, 취침과 기상시간, 심지어는 마음가짐까지 관심 있게 전달해준다. 수능시험이 끝난 당일 오후에는 시험 문항을 분석하고 난이도등을 정리해 보도하면서 이후 정시 시험대비 방향을 제시한다. 

수능시험 날의 풍경 그리고 부모들

전국의 모든 사찰과 교회 등에서는 수험생 부모와 조부모들 대상으로 100일 기도 이벤트 사업을 진행한다. 딱 붙는 엿, 기억력 향상 비타민, 잘 찍는 연필, 장원급제 수능 종합세트, 소원 팔찌 등 수능특수는 어떤 기념일 못 지 않다. 섬과 벽지가 많은 전남지역은 시험 전날 미리 육지로 나와 시험을 치르게 되어 경비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컨디션 조절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시험을 잘 보도록 하기 위해 수험생 가족은 수능식단을 마련해 9월부터 먹이고 특히 시험 당일 날 미역국을 먹이는 것은 철저히 금기시 하는 미신도 확실한 믿음으로 존재한다.

전국적으로 기온이 뚝 떨어져 매섭게 추운 날씨였지만 수험생을 응원하는 열기는 뜨거웠다.

날이 밝기도 전에 수험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수험장 앞에 모인 후배학생들의 북치고 구호외치는 모습과 등 두드리며 격려하는 교사들의 모습, 자녀가 시험을 무사히 치르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학부모의 모습, 수험생들이 힘차게 각오하는 모습은 몇 십 년째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대한민국의 변하지 않는 모습이다.

자식과 같이 공부하고 같이 시험을 치르는 부모들의 기억 또한 각별하다. 교회나 절에서 국어 시험이 치러지는 80분간 기도를 하고, 수험생이 휴식하는 30분간 함께 쉬는 방식으로 부모도 함께 수능을 치르기도 한다. 자식이 홀로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안쓰러워 눈물을 흘리고, 직장에 출근해 일을 손에 잡지 못한다. 모의고사 치른 날에도 자식의 눈치를 살피는데 시험 끝나고 나오는 자식의 표정 보는 것은 두렵기만 하다. 집에 와 말없이 가채점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가장 힘든 일이다. 시험이 끝난 날이나 시험결과가 발표하는 날은 시험결과에 대한 비관으로 여지없이 젊은 청춘이 몸을 날리는 현실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가 수능을 잘 치고 좋은 대학을 간다고 해서 당장 부모님이 좋은 것은 없다. 즐거운 대학 생활을 하는 것도, 멋진 꿈을 꾸는 것도 모두 아이의 몫이다. 서울에 있는 명문 대학에 진학할수록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줘야 한다는 압박만 늘어날 뿐이지만 부모들은 아이의 수능 시험에 함께 울고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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