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읽기 윤소희 작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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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읽기 윤소희 작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목포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19.12.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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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희 (작가‧ ‘동네산책’ 책방지기)
윤소희 (작가‧ ‘동네산책’ 책방지기)

[목포시민신문] 베네치아가 물에 잠겼다는 뉴스에 가슴이 찌르르 아파왔다.

어느 골목 허름한 식당 주인 부부의 낙천적인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베네치아 여행 중에 운 좋게 들른 곳, 딱 한 번 가보았을 뿐이지만 유독 인상이 깊었던 식당. 거기 과연 괜찮을까.

별다른 계획 없이 배를 타고 베네치아 주변의 섬들을 어슬렁거리던 어느 해 가을. 턱수염이 유난히 근사했던 이탈리아 아저씨와 우연히 몇 마디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베네치아의 특산물인 대구 요리 바칼라를 반드시 먹어봐야 합니다. 골목에 숨어 있어 찾기 어렵겠지만 할아버지 때부터 대를 이어 하고 있는 집입니다.”

전화번호는 모른다며 자세히 그려 준 지도 덕분에 마침내 식당을 찾는데 성공했다. 관광객들은 다니지 않는 골목이었다. 말린 대구를 으깨 마늘, 소금, 후추, 허브 등을 넣고 치대어 뭉쳐 노릇하게 구워냈다는 바칼라가 나왔다. 모양새며 향이며 맛이며 얼마나 맛있었는지! 특급 호텔 일류 셰프의 요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주인장이 권해준 향은 강하나 맛은 부드러운 화이트 와인과 함께 베네치아 여행 최고의 음식을 그날 맛보게 되었다.

베네치아는 그때가 세 번째였는데도 나는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다.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다음날부터 식당에 갈 때마다 바칼라를 찾았지만 먹을 수 없었다. 대부분 관광객들의 기호에 맞춘 관광 상품 같은 음식들만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칼라의 맛만큼이나 인상 깊었던 것은 주인 부부가 갖고 있던 베네치아에 대한 지독한 사랑과 자부심이었다. 음식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를 하나씩 보여주며 그가 후렴처럼 반복한 말은 베네치아 산()’이었다. 대구는 물론, 여기 농장에서 기른 송아지, 여기에서 재배한 채소와 과일, 여기에서 만든 식초, 소금, 와인 등. 모두 베네치아 산이었다. 심지어 식당에서 쓰는 그릇과 의자와 테이블까지도! 우리는 식당 주인도 베네치아 산이라며 함께 웃었다. 베네치아 산이 그렇게 좋은 것이냐는 질문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로컬을 가장 값어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 당신도 서울을 사랑하지 않느냐.”

엄마 생각이 났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농사에 서툰 엄마가 오십 넘어 시골을 찾아 이사를 하고 양파며 고추며 고구마며 보내줄 때마다 매번 강조하는 말이 있다.

엄마가 직접 심은 거야!”

엄마의 농산물들은 작거나 못생기고 먹기에 불편한 것들이 더 많았다. 시장에 나가면 상품 취급도 못 받을 만한 것들이었다. 농사가 점점 익숙해지고 경험도 쌓이면서 해마다 조금씩 아주 천천히 때로 우연히 특상품을 얻게 되는 경우도 생겼다. 고기와 생선을 빼고는 다 엄마가 심은 것, 거둔 것, 말린 것, 빻은 것이었다. 잘했든 못했든 엄마의 자부심만큼은 고정불변이었다. 엄마는 그곳에서 외지인이었지만 그 작은 밭은 엄마에게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내가 배운 로컬은 그런 것이었다.

이 제품은 어디가 최고, 최초, 최상이라는 유명세가 아니라, 볼품 없고 질이 조금 떨어져도 여기에서 나고 자란 순수 혈통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사랑. 객관적인 품평이 아니라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질긴 생명력.

베네치아 어느 골목의 허름한 식당에서, 시행착오가 끝나지 않는 엄마의 밭에서, 어렴풋이 내가 배운 로컬은 내 것에 대한 겸손한 애정과 당신의 것에 대한 당연한 존중이었다. 어느덧 로컬을 지향하게 된 나는 어느 지역에 가든 그 지역의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건을 사고 그 지역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열렬히 원하고 있었다.

최근 유행처럼 접하게 되는 용어, 도시 재생. 도시 재생의 미래는 로컬에 있다며 각종 강좌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로컬 사업 관련 활동가와 창업자들이 전국을 돌며 사례를 전파하고 있다. 목포도 로컬 사업을 위한 여러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컬은 특정 시기의 트렌드나 도시 재생을 위한 방편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감지하는 로컬은 그 무엇도 아닌, 사랑. 그 무엇도 아닌, 자부심. 목포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강조하는 목포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서 고스란히 따스한 로컬을 경험하며 안심한다. 그리하여 목포는, 어디까지나 목포였으면 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목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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