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갱의 삶을 빌린 영원한 순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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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의 삶을 빌린 영원한 순례자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2.0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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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달과 6펜스
저자 윌리엄 서머셋 몸
역자 송무|민음사 |2000.06.20 원제 The Moon and sixpence

[목포시민신문] 서머셋 몸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에도 여과없이 등장하는 그의 문학적인 특성을 엿볼 수 있다. 작가의 서술은 폐쇄적일 뿐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스스로가 극에 등장해서 서술하기를 원하고 인물에 대한 묘사도 극 중 서머셋 몸이 만나는 사람에 한정될 뿐만 아니라, 시공간의 유연성이 배제되는 한계가 명확하다.

몸은 작품에서 프랑스의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한 중년의 사내 스트릭랜드를 만나고 그와 대화할 때, 스트릭랜드라는 외적 갈등에 괴로워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면을 묘사한다.

극의 본격적인 사건은 스트릭랜드가 자기 광팬과 만남으로써 비로소 진행된다. 자기 광팬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끝낸다면 이야기는 절정으로 다다르지 못한다. 스트릭랜드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람이며 내면적인 양태가 없는 존재로 설명되는데 자기 광팬이라는 누군가와 만나야만 스트릭랜드의 화가로서의 명성이 유효하고, 존재 가치가 부여되기 때문에, 만남을 지속하든가 그러지 못하다면 상대에게서 충족되고 있는 욕구마저 파괴해야 하는 사람이자 예술가로 묘사된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스트릭랜드가 본인의 예술을 완성시키기 위해 타히티 섬으로 가는 결말도 말이 된다.

[당신을 사로잡고 있는 그 한없는 갈망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당신은 자신을 괴롭히는 정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딘가를 향해 위험하고 고독한 모색의 길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당신은 존재하지도 않는 신전을 찾아나선 영원한 순례자 같아 보여요. 212p]

자신에게 존재 가치를 부여했던 유일한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나서야 그리고 싶었던 진정한 그림을 그리며 내면을 발견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타히티 섬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가 원하는 진정한 예술을 완성한 후 병에 걸려서 충분한 여생을 보내지 못한다는 점은 작품의 완성과 대조되며 독자에게 안타까움을 선사한다. 이에 관한 소식도 서머셋 몸의 얘기를 통해서 한 가지 사건 정도로 뭉뚱그려지는 상황이 글에 펼쳐지는 것도 진한 여운을 남겨준다.

이 책의 주제,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점은, 타율적 인간이 내면의 예술성을 충족하려는 노력에 있어서 가지는 어려움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그 공감이 쉽사리 와닿지 않는다면,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의 냉소적인 설정이 개인에 비해 극대화되어서 그랬을 것이다.

고호의책방 이효빈 북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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