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읽기-윤소희 작가] 목포가 좋아서 덕질하는 아키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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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읽기-윤소희 작가] 목포가 좋아서 덕질하는 아키비스트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3.1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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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윤소희 (작가‧ ‘동네산책’ 책방지기)

[목포시민신문] 목포 원도심을 거닐다보면 사진 찍기에 대한 강박을 느낄 때가 많다.

어쩌면 목포에 대한 나의 첫인상을 잊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곧 뭔가 사라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함 때문이기도 하다. , 저건 거의 백년 전 주택 같아. 찰칵! , 70년대에나 보던 간판인데. 찰칵! , 저 커다란 창고문 녹슨 것 좀 봐. 찰칵!

돌보는 이 없이 저절로 남겨진 오랜 세월의 흔적. 방치되고 낙후되어 결과적으로 보존되고 있는 송구스러운 아이러니. 덕분에 근대역사문화의 거리라고 해도 테마 박물관처럼 근대 역사만 간직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 옛날 이 도시가 형성되던 때부터 지금까지의 삶이 겹겹이 고스란하다. 마치 아무렇게나 부려놓은 남의 집 이삿짐에서 그 집안 내력을 한눈에 보게 될 때처럼 친숙하고도 생경하며 애잔하고도 민망한 민낯의 세월을 목격하기 일쑤다.

그럴 때마다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어서 뭘 어쩌겠다는 것도 딱히 없으면서 가끔 사진을 놓쳤다 싶을 때는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새로 공사하고 있는 장면을 볼 때 주로 그렇다. 무심코 거리를 지나는데 암롤 트럭이 떡하니 세워져 있는 게 보이면 이미 철거가 시작된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낡은 빈집은 벌써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건물주가 나한테 미리 예고라도 하고 공사를 시작했어야 마땅한 것처럼 서운하고 갑작스러워 안절부절이다. 아아, 사진을 찍어놨어야 했는데. 아깝다며 후회해도 소용 없고, 사실은 뭐가 아까운지도 잘 모르겠다. 그나마 그 자리에 어떤 집이 있었는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다. 원래 뭐가 있던 자리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국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나 뿐만이 아니다.

이 사진 보세요. 한 달 전에 우연히 여길 찍었는데, 지금 다 허물고 공사 들어갔어요.”

다행스럽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 공사 현장의 진척 상황을 수시로 사진 찍어 보여주는 이도 있다. 그런가하면 낡고 오래된 것이 자신의 취향이라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이런 낡고 오래된 것들 덕분에 목포가 너무 좋아요.”

이 벽 페인트 자국 보세요. 세 들어올 때마다 새로 덧칠한 색깔들이 차례로 다 보여요. 너무 처연해서 아름답죠!”

저 집은 얼마 전에 리모델링 들어갔는데 벽지 뜯어내다보니 열 겹도 더 되더래요. 사진 찍어뒀어야 하는데!”

이들은 낡고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졌지만 앤티크를 밝히는 사치스러움과는 방향이 다르다는 걸 확인하는 즉시, 떳떳하고 든든한 취향 공동체가 된다. 70년대 풍의 낡은 간판, 한때 융성했으나 쇠락한 거리, 다 허물어져가는 흙벽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나의 취향이 비로소 이해받고 인정받고, 심지어 뜻을 같이 하는 연대의 행보로 나아갈 수 있음을 가늠하며 벅찬 감동과 설렘마저 느낀다.

 

말하자면 이들은 덕후들이다. 저마다 나름대로의 목포 아카이빙을 하고 있었음을 고백하며 각자의 덕질을 열어 보인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레트로 트렌드와 그 맥락이 닿아 있는 것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유행 따라 일부러 옛날 것처럼 만들어놓은 것을 가지고 곧 사라질까봐 안절부절하지는 않는다. 그건 이미 새로 생겨난 거니까. 세월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가장 최신의 것에 다름 아니니까.

최근에 젊은 외지인들 중에 목포 아카이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꽤 만났다. 젊은 세대에게 옛날의 흔적들은 낯설고 새롭다. 외지인들에게 보이는 목포의 풍경들도 낯설고 새롭다.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게 당연하다. 반대로, 이미 익숙한 목포가 결코 낯설고 새롭지 않지만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사무쳐 아카이빙을 하는 이들도 있다. 나처럼 체계 없이 내키는대로 사진만 찍다 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무슨 상관이랴.

누군가는 낡은 집과 오래된 풍경들을 사진 찍거나 그림 그리고, 누군가는 어르신들만 언뜻언뜻 쓰고 있는 사투리를 긁어 모으고, 누군가는 항구 도시 특유의 신산스러운 인생 스토리를 인터뷰하고, 누군가는 대를 이은 노포들의 오래된 양념맛을 오감으로 기록하고 있다.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작업이 결코 아니다. 목포가 좋아서, 소중해서, 아름다워서. 제대로 실컷 덕질을 하는 이 아키비스트들이 어느날 한데 뭉쳐 수다스러워지기를 기다린다. 방치되어 저절로 보존된 눈물 겨운 목포가 아니라, 취향 공동체 덕후들의 집요한 덕질로 있는 힘껏 지켜낸 목포. 덕후들의 수다 소리 요란하고 드높은 오래된 미래로서의 목포를 기다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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