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이철호 카럼니스트] 고요한 바다는 위대한 선장을 만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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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이철호 카럼니스트] 고요한 바다는 위대한 선장을 만들지 않는다
  • 류용철
  • 승인 2020.04.0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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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칼럼니스트
이철호 칼럼니스트

[목포시민신문] 옛 중국이나 조선시대에 양반 자녀들 사이에 즐기는 게임 가운데 승경도 놀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승경도란 벼슬자리에 오르는 도표라는 뜻이다. 게임의 취지는 양반 자녀들이 장차 벼슬길에 나가게 될 것이니 미리 익혀 두자는 정도로 이해가 된다. 조선시대에 벼슬자리에 가장 적임자를 써넣는 승경도 놀이도 있었다. 예를 들면 병조판서에 이순신 등을 써넣는 놀이이다. 그중 예조판서에 서희가 압도적인 최고 적임자로 꼽혔다고 한다. 예판은 지금의 외교부장관이다. 역사상 서희의 등장은 중원의 송, 북방의 요, 그리고 한반도의 고려가 삼각대치를 이루던 시기이다. 송을 무너뜨리고 중원의 패자가 되기를 원했던 요는 소손녕의 80만 대군으로 고려를 침입하였고 고려는 순식간에 항복론과 할지론을 두고 논박하는 위기를 맞게 된다. 이후 이야기는 교과서에서 배운 바대로 서희의 담판에 적은 물러가고 강동 6주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다. 서희의 담판은 무모함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바를 냉철하게 꿰뚫어 보고 적진에 들어가는 자기희생이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성웅 이순신은 두말할 것도 없이 민족의 영웅이다. 이순신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도 물론 존재하지만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순신 장군께서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난중일기를 읽어보면 그야말로 평범하고 진솔한 인간적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어느 날 아랫 장수가 술을 들고 와서 과하게 나눠 마시고 술병이 나는 바람에 다음 날 업무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구절도 나온다. 이거 솔직히 영창감(?)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이순신 장군은 영웅이 되었는가? 역설적으로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전쟁을 위한 방비는 무용지물이 되고 영웅은커녕 정적들로부터 비난만 들었을 것이다. 위기의 시대가 준비된 그를 부른 것이다. 난세에 영웅이 출현한 셈이다.

필자가 입는 몇 벌의 옷과 가방에는 아직도 노란색 세월호 배지가 달려있다. 세월호는 인양되었지만 침몰에 대한 진실은 함께 인양되지 못하였다. 진도 인근 해역은 거센 조류 탓에 적조가 없는 바다로 알려져 있다. 유류비를 절감하고자 그런 위험천만한 바다를 지름길 항로로 택했다면 백 번을 주의해도 부족하지 않았을 텐데 과연 그들은 무엇을 했던가? 유능한 선장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지금 전 세계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19로 인해 유래없이 엄중한 상황을 겪고 있다. 몇 주 전 본 란에서 바이러스의 확산범위와 속도, 그리고 시민들의 심리가 매우 중요하며 각국의 재정확대와 통화완화정책이 예상된다고 적은 바 있다. 정책들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지만 솔직히 그 충격은 예측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에서 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와중에도 우리나라가 다소 진정되고 있는 모습(속단은 금물이지만)을 보여주는 데에는 숨은 영웅들이 크게 기여하였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선거를 의식한 일부 정치꾼들의 협잡이 이 힘든 시기에 백성들에게 위로는 고사하고 고통을 주고 있다. 그들은 위대한 선장을 꿈꾸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야말로 일그러진 영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위대한 선장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소리 없는 숨은 영웅들의 활약이 더더욱 절실하다. 확진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던 지난 1월에 진단시약을 개발한 바이오회사들, 개발 1주일 만에 긴급사용승인을 허가한 식약처의 선제적 행정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우리나라에 의료장비와 진단키트 지원을 요청하였다. 90여 국가가 동일한 진단키트의 수입 또는 인도적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특별히 고통을 겪고 있는 대구시민들에게 진도의 봄동과 전복, 울금이 전달되면서 각계에서 온정의 봇물이 쏟아지고 있다. 수습기간도 없이 투입된 공중보건의들 덕분에 공격적인 검체 조사가 신속하고 대규모로 이루어진다고도 들었다. 간호사, 의사들은 자기 몸을 돌볼 여유도 없이 바이러스 전선을 지키고 있다. 이들 모두가 진정한 우리들의 영웅들이다. 내가 살아가는 대한민국 참 대단한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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