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양승희 칼럼니스트] 카뮈의 패스트와 코로나19의 닮음과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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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양승희 칼럼니스트] 카뮈의 패스트와 코로나19의 닮음과 다름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4.2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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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희 칼럼니스트

[목포시민신문] 알베르 카뮈가 노벨상을 받은 ‘페스트’를 김화영의 번역을 통해 감동적으로 읽었다. 어려서부터 여러 차례 책을 들었는데 끝을 맺지 못했었다. 번역 때문이었다. 그런데 김화영의 번역은 우리 언어로 쓰인 원작처럼 잘 익힌다. 게다가 카뮈가 주제를 담은 문장력을 최고로 살렸다. 카뮈의 작품을 대부분 번역한 김화영은 페스트가 전쟁(세계 2차 대전)을 상징한 것으로 본다. 전쟁은 질병이나 죽음과 마찬가지로 부조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페스트를 읽으면서 울컥울컥했다. 우리에게 현재형인 코로나 19의 비참함과 고통이 읽혔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작품의 배경인 오랑시는 코로나 19로 격리된 황량한 중국의 우한을 떠올린다. ‘비둘기도 없고 나무도 없다. 공원이 없어 새들이 나는 소리도 없다.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도시. 계절의 변화는 시장에서 파는 꽃광주리를 보고서야 겨우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권태에 절어 있다.’  
어느 날 의사 베르베르 리유는 죽어 있는 쥐, 피를 토하면서 쓰러지는 쥐를 본다. 나중에는 헤아릴 수 없이 죽어 있는 쥐와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고 페스트를 확신한다. 의사 리유는 다른 의사들과 함께 환자들의 격리를 요구하였지만 도청은 쉬쉬한다. 전쟁만큼이나 많은 페스트를 경험했음에도 속수무책이다. 그러다가 병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 사망자의 수가 늘자 대책 없이 페스트 사태를 선언한다. 그리고 도시를 폐쇄해 버린다.
박탈당한 시민들은 철장 석에 갇힌 신세가 됐다. 소용도 없는 기억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모든 유형수들처럼 고통을 당한다. 뿐만 아니라 미래조차 박탈당한다. 도시가 귀양지가 되면서 시외로 나갔던 가족들과 돌발적으로 이별도 당한다. 편지를 쓴다는 사소한 기쁨마저 거부당한다. 시외와의 전화를 막았다. 전보는 상투적 문구나 정기적으로 교환하는 정도다. 그러나 그들은 이별을 참아낸다. 그리고 말이 없어졌다. 이 부분을 보면서 코로나 19에 대해 비밀스런 일본, 뻔히 알면서도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미국이나 유럽이 떠올랐다.
함께 활동한 타루는 의사 리유에게 왜 헌신적인지를 묻는다. 리유는 “병으로 해서 겪는 비참과 고통을 볼 때, 체념하고서 페스트를 용인한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나 눈먼 사람이나 비겁한 사람의 태도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만약 어떤 전능한 신을 믿는다면 자기는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것을 그만두고, 그런 수고는 신에게 맡겨 버리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리유는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는 무엇이 올지는 모르나, 당장에는 환자들이 있으니 그들을 고쳐 주겠다고 말한다. 힘이 미치는 데까지 그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그뿐이라고. 그러면서 어떤 여자가 죽는 순간에 ‘안 돼!’” 하고 외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고 되묻는다. 타루는 페스트가 리유에게 어떠한 존재인지를 또 묻는다. 그러자 “끝없는 패배지요.”라고 답한다.
작품의 핵심인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 대한민국의 영웅들이 하염없이 떠올랐다. 죽음으로 환자를 살펴 주고, 가족들과 떨어지고, 불편한 거처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 의사들. 가족들을 놔두고 온 간호사들의 얼굴에 남아 있는 반창고 흔적. 불편하기만 하는 방의복을 입고 일하는 모든 관계자들. 전국에서 대구로 간 소방원들. 그들을 걱정하고 있을 가족들. 환자들을 도와주는 도우미들.
이들을 위해 응원의 편지를 보내고, 마스크가 부족했을 때는 마스크를 손수 만들어서 보낸 시민들. 마스크의 원료인 펄프를 사들여 온 기업들. 어느 해보다 아름다운 벚꽃 구경을 포기한 시민들. 실업자가 되고, 가게를 닫았음에도 참고 기다리는 시민들. 모두가 아름답고 눈물겹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잊을 수 없는 질병관리 본부가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 본부장을 비롯한그들의 노력은 세계를 바꾸었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당국과 학계, 업계가 모인 서울역 긴급 대책회의를 보면서 우리 대한민국 만세였다. 진단 키트 회사, 드라이브 설계자 스루, 이를 적용한 의사들. 이들의 코로나 19에 대한 준비는 세계를 놀라게 했고 각 나라까지 도울 수 있었다.   
책 머리쯤에서 보면 의사 리유는 일 년째 병석에 있는 아내를 요양소로 보내게 된다. 그는 아내에게, “당신이 돌아올 때는 모든 일이 다 좋아질 거요. 그때 새 출발을 합시다.”라고 말한다. 우리도, 그리고 세계도 새 출발의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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