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읽기-윤소희 작가] 세월호가 목포로 온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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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읽기-윤소희 작가] 세월호가 목포로 온 까닭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4.2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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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희 (작가‧ ‘동네산책’ 책방지기)
윤소희 작가
윤소희 작가

[목포시민신문]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적이 있다.

배신 당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보다 훨씬 견디기 어려운 것은 두려움이었다. 미워하고 싶지 않은 그를 미워하게 될까봐 두려웠고, 미워해야 마땅한 그를 미워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내가 믿었던 그가 나쁜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게 될까봐 두려웠고, 그걸 확인하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진실은 감추어져 있었기에 믿어서는 안 되는 걸 믿을까봐 두려웠고, 믿어야 할 것을 믿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깊고 캄캄한 물속을 떠도는 막막한 슬픔으로 수장되었다.

두려움은 결국 깊고 날카로운 상처로 남아 간간이 내 일상을 무너뜨리지만 잊으려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잊지 않으려 애쓴다.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야만 다시 반복되지 않을 거라 믿는다. 만약 다시 반복된다해도 변명이나 자기방어나 적반하장의 파렴치한 태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으려면 잊지 않아야 한다.

잊지 않겠습니다.”

지난 16, SNS에 가장 많이 올라온 문장이 아닐까 싶다.

책방을 열기 전 혼자 조용히 목포신항으로 향했다. 6주기 추모 행사를 준비하는 관계자들과 몇몇 언론 차량과 카메라들이 주섬주섬 움직이고 있었다. 붉게 녹슨 채 덩그러니 놓여있는 세월호를 바라보며 망연했다. 나는 세월호의 상처를 위해 무엇을 했나. 상처는 치료하지 않으면 저절로 낫지 않는다. 방치하다보면 점점 깊은 흉터로 남는다. 심지어 어떤 상처는 덧나면서 변이를 일으켜 다른 질병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상처가 생겼을 때는 되도록 빨리, 매일, 꾸준히, 안심해도 될 때까지 들춰보고 약바르고 확인하며 보듬어야 한다. 다 아문 것 같아 보여도 어루만지며 보살펴야 한다. 아픔과 두려움이 반복되지 않을 거라는 안심이 상처보다 단단하게 자리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다시 세상을 믿으며 살아갈 용기를 갖는다.

6주기가 되도록 아무 것도 한 게 없는 나는 민망한 마음으로 겨우 리본 하나를 달고 도망치듯 돌아왔다. 잊지 않겠습니다,는 다짐이 해마다 416일 단 하루의 생색인 것만 같아 스스로 거슬리고 아니꼬왔다. 서둘러 돌아오는 길에 4월은 왜 이다지도 아픈가 생각한다. 잊지 않겠다고 해놓고 잊고 살았기 때문이었나. 그러나 아주 잊지는 못했기에 다시 떠올라 설움에 겨운 4. 거리의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면 거기 벚나무가 있었음을 비로소 아는 계절. 어리고 연약한 빛으로 피어나는 생명이 여기 세월호에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때. 잊지 않겠다는 그 하루의 다짐을 잊은 지 오래라는 걸 알게 되는 때.

세월호 아이들은 어째서 이 낯선 도시 목포에 와 있는 걸까. 무연의 도시 목포까지 와서, 더구나 다리를 건너 당도할 수 있는 신항에서 외로운 채 점점 잊히는 것은 아닐까. 노란 리본을 달며 생각한다. 기억공간이 여기에만 이렇게 소외된 듯 황량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있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 일년내내 지켜질 수 있는 또 다른 기억공간이 목포 곳곳에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세월호가 목포로 온 까닭이 있을 것이다. 속절없이 죽어간 세월호 아이들을 위해 목포가 할 수 있는, 목포라서 가능한, 목포라서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목포에 아무 연고도 없이 내려왔다. 내 선택이지만 때로 어리둥절하고 막막하다. 어쩌면 내 선택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목포로 온 까닭이 있을 것이다.

다시 묻는다. 세월호는 어째서 목포로 왔을까. 목포는 전국 4대 관광거점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케이블카를 타러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코로나19도 곧 안정세에 접어들 것이며,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은 압도적인 승리를 얻어냈다. 이제 목포는 세월호가 온 까닭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상처 입어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추운지, 더운지, 아픈지, 힘든지,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된다. 사랑 노래가 되기 때문이다. 질문하고 들어주자. 세월호 아이들이 목포를 향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귀기울여 듣는 것으로 우리는 환히 빛나는 기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목포가 부르는 노래에 아이들이 춤을 추며 돌아오기를. 두려움을 잊고 다시 태어나기를. 기필코 더는 떠나지 않기를. 머지 않아 세월호가 목포로 온 까닭을 비로소 알게 되기를.

죽은 이들이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건 여러분도 나만큼-아니 어쩌면 더-잘 알고 계십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다면 망자들은 어떻게든 우리를 도와주려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땅히 귀를 기울여야 하죠.” (존 버거,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강수정 옮김, 열화당,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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