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이철호 칼럼니스트] 포스트 코로나19 그리고 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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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이철호 칼럼니스트] 포스트 코로나19 그리고 국격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5.13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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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대한민국은 아시아 대륙 끝에 위치한 별로 주목받지 못한 나라에 불과했다. 단군조선 이래 지구인의 관심을 받은 일이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유럽인이 우리나라에 눈길이라도 주었던 19세기 말경, 조선은 사대부 나라로서 시한부 생명이 종료될 무렵이었으니 그럴듯한 표현을 당시 기록에서는 찾기 어렵다. 이사벨라 비숍이 쓴 ‘한국과 그 이웃 나라’에도 대한민국은 더럽고 게으름뱅이로 가득찬 이상한 나라였다. 이는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이 동양인들을 늘 경도된 시각으로 바라본 결과이기도 했다.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과학문명을 일으키고 산업혁명으로 부를 축적한 자신들은 위대하고, 그렇지 못한 동양인들을 업수히 여기는 오리엔탈리즘이 기저를 이루고 있었다.

8세기 초 다라니경을 찍은 목판인쇄술의 발명은 그 자체가 대단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낱 일회성으로 그치고 말았다. 14세기 후반에 발간된 직지심체요절 또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책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 이상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유럽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한자와 알파벳 차이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측면을 감안 하더라도 같은 발명품을 놓고 활용한 목적이 판이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책을 잘 보관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면 유럽은 정보의 전달에 그 목적이 있었다. 15세기 중엽에 발명된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는 유럽 전역에 1천 개에 이르는 인쇄소와 2만 명의 인쇄공 일자리를 창출하였고 수많은 서적을 간행하게 하였다. 이러한 정보의 대폭발은 유럽을 중세에서 근대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그리고 과학혁명을 촉발시켰다. 세상의 주도권이 동양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는, 그래서 유럽이 역사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나비효과는 의미를 부여할 때 폭발력이 극대화됨을 실감하게 해준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지구인의 일상뿐만 아니라 근본마저 뒤흔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필자가 과거 종사했던 금융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미국 FED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은 제로금리와 무제한의 양적완화정책을 펼치고 있다. 시중 유동성이 넘쳐난 결과, 일찍이 천재경제학자 케인스가 예견했던 이자의 종말시대가 열리고 있다. 돈이 귀하던 시절 은행 대출을 알선해주던 브로커 이야기는 이제 신화가 될 것이다. 금융업은 당장에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 같다. 특히 상품 특성상 장기상품이 주종을 이루는 보험업은 대규모 역마진이 불가피해 보인다. 과거에는 풍부한 시중 유동성이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으로 유입되는 사례가 정석이었으나 미래의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그마저도 불안전 자산으로 치부되고 있다.

인터넷과 결합된 비즈니스가 미래의 총아임은 불문가지이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이 분야의 가속페달이 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인터넷 쇼핑몰의 배송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향후 치맥과 유사한 융.결합 배달신상품들이 대거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금번 각급 학교의 온라인 개학 역시 새로운 영역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에 불과하다. 바야흐로 인터넷기반 학습(e-learning)으로의 전환기를 관통하여 보편화, 일반화되는 시대를 조만간 맞게 될 것이다. 지난 총선은 실시 여부를 고민하다 철통같은 방역 덕분에 성공적으로 종료되었지만 다음 선거부터는 온라인투표가 도입되지 않겠는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기본소득개념의 지원금을 지급한 것은 구휼의 마중물이 되어 중앙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을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적으로도 진보가 물꼬를 터서 하나의 보편적 제도로 정착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지금 우리는 국난의 와중에서 도약의 기회를 잡고 있다. 제조업 기반을 유지한 상황에서 우리의 유연한 대처는 세계의 부러움이 된 것이다. 서정주 선생은 한송이 국화꽃이 그냥 피는 것이 아니라 했다. 대한민국의 국격 도약에는 BTS가 봄부터 울어댄 소쩍새라면 영화 기생충은 여름날의 천둥이고 코로나19는 가을날의 무서리가 아닐는지? 팍스아메리카나가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품격있는 팍스코리아나의 부상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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