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의 세상사는 이야기] 40년전 내가 참여하고 내가 겪은 목포 5.18민주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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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의 세상사는 이야기] 40년전 내가 참여하고 내가 겪은 목포 5.18민주항쟁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5.2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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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나는 매년 봄이 오면 마음의 병이 육체의 병이 된다. 40년 전의 응어리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40년 전 나의 행함을 오늘도 병상에서 작성 한다.

40년 전 목포 기독교 신도들의 이야기다.

나는 당시 목포YMCA 한울부부클럽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었다. 1980519일 오전 광주YMCA 직원으로부터 대학생 중심으로 군부타도를 위한 시위 가격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진압을 위하여 군부대가 동원되어 현재 시위대 학생들 가운데 부상자가 상당수 된다는 첩보가 당시 목포YMCA 총무 하용삼에게 전달되었다.

하용삼 총무가 나에게 연락이 와서 즉시 만나 상황을 분석해보고, 광주YMCA에 다시 상황을 알아보니, 이 시위가 장기화 될 것 같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19일 오후, 목포YMCA 한울부부클럽 회의를 소집하였다.(본인은 당시 클럽 회장이었음)

회의결과, 20일부터 구국기도회를 갖기로 결의했다. 시간은 매일저녁 7, 목포복음교회당(당시 남교동에 위치했음), 인도 회장 박 승.

20일 저녁 7시 첫 번 기도회에서 한울부부클럽 회원과 목포YMCA 관계자 등 30여 명이 모여서 기도회를 시작하였다.

광주의 정확한 상황을 파악키 위해서 목포YMCA 하용삼 총무와 회원 박영종, 박삼석 3인을 21일 광주에 파견하였다. 21일 늦은 밤 마지막 기차를 타고 돌아온 3인의 상황보고를 듣고 22일 오전, 클럽 전체회의를 열어서 사후 대책을 논의한 결과, 결정사항은 25일 주일 목포시내 전교인 구국기도회를 목포역 광장에서 개최키로 결의하였다. 구국기도회 개최를 위하여 목포기독교교회협의회와의 협의를 위하여 하용삼 총무, 박 승 회장, 김부영 사무장 3인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22일 오후 목포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나홍석 목사님께(당시 성산교회 담임) 연락하여 23일 오전 교회협의회 임원들과 협의한 결과 구국기도회 개최에 합의하였다.

24일 저녁 8시 성산교회에서 교회협의회 임원들과 클럽 대표 3인이 모여서 예배 순서 등 구국기도회를 위한 제반사항을 논의한 결과 당시 통행금지 시간이 지난 1130분 최종 마무리를 준비하였다. 늦은 밤 예배 순서지를 인쇄에 맡기고자 목포시내 각 인쇄소를 다녔으나, 모두 문을 닫아 한 곳도 문을 연 곳이 없었으나, 다행히 목포정명여자중학교 옆 인성인쇄소가 불이 켜져 있어, 반가움 속에 사장님께 순서지 10,000장을 부탁드렸더니, 이 시간에는 도저히 할 수 없다며 용지도 부족하다고 했다. 간곡히 부탁한 결과 사장님께서는 수락하셨고, 용지부족으로 5,000장만 인쇄하였다. 인쇄소 문을 나서는 순간의 시간은 자정을 넘겼다. 이때 통금시간이 지난 이후 군부대 요원들이 요소마다 통행자들을 단속하고 있었다. 극히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전주 뒤에 붙어 간신히 피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목포시내 각 교회는 25(주일) 오전 12시까지 담임목사 인솔 하에 목포역 광장으로 집합하기로 하였다. 25(주일) 오전 12시 목포역 광장에 단상을 세우고 마이크 설치를 하는데 협조해주는 전파사가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목포시 남교동에 위치한 제일전파사 사장님이 협조하여 시설을 설치할 수 있었다. 당시 목포역 광장은 지금처럼 부속건물들이 없었고 굉장히 넓어 시설 설치에도 상당한 시간을 소요하였다.

25(주일) 오전 12시 목포역 광장에서 목포시내 100여개 교회 성도들과 우국 시민들 25,000여명(경찰추산)이 모여서 구국기도회를 나홍석 목사님 인도로 드렸으며, 기도회 말미에 교회협의회 명의로 시국 선언문을 유기문 목사님(당시 죽동교회 담임)이 낭독하였다. 기도회 이후 시위대는 총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소지한 총기를 반납할 것을 결의하고, 계속하여 평화시위를 하기로 결의했다. 또한, 계엄군에게는 시위대에게 무력사용과 총기사용금지를 강력히 촉구했다.

26일 오전, 목포YMCA 회의실에서 범시민단체가 모여 논의한 결과, 시위대가 소지한 무기 회수 작업은 목포청년회의소(JC, 회장 이형래)가 전담하기로 결의하였으며, 목포는 계속하여 비폭력 평화시위를 이어가기로 결의하였다.

 

<약력> )목포문화원 향토문화연구위원 / 목포 복음교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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