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양승희 칼럼니스트] 긴급 재난 지원금은 공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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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양승희 칼럼니스트] 긴급 재난 지원금은 공짜가 아니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6.0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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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긴급 재난 지원금 덕으로, 막내 동생의 생일 선물로 미용실을 함께 다녀왔다. 처음에는 지원금을 기부하자던 아들들이, 지원금을 쓰는 것도 좋을 듯하다며 미루게 한 미용실 행사였다. 우리는 비싼 경비를 들여 머리를 손질한 후 장미의 거리로 나섰다. 근처에 사무실이 있는 동생은 평상시보다 거리에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가게를 드나드는 사람들이 보였다.

거리를 거닐다가 동생과 구경삼아 옷집을 들어섰다. 동생의 친구 가게란다. 진열해 놓은 옷을 보고 있는데 오십대쯤 되는 아주머니가 내게로 다가왔다. 멋진 디자인의 붉은 겉옷을 입고. 여행갈 때 입으면 좋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서슴없이 여행에는 밝은색이 좋지요. 멋지네요. 입으세요. 여행에 입기에 안성맞춤이네요라고 했더니 안심이 된 듯 살짝 웃었다.

동생과 눈요기를 하다가 가게를 나서는데 그분이 여전히 그 겉옷을 입은 채로 앉아 있다. 즐겁다기보다는 걱정스런 얼굴로. 말을 건네고 싶었는데 그냥 가게를 나섰다. 그래서인지 집으로 가는 동안 편안하지 않았다. 멋진 옷을 입고 여행하고 싶지만 마음에 걸렸을까. 자식들일까. 어르신 놔두고 혼자 사서 입을 수 없어서일까. 그분에게 화이팅을 해드릴 걸. 지원금을 생각하고 옷을 사러 나왔을 터인데. 꼭 사서 이쁘게 입으세요 라고 말을 못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집에 돌아와 페이스북에 들어가니 아는 분의 글이 올라 와있다. 80세가 넘은 시어머니께서 전화가 왔는데, 오늘 긴급 재난 지원금 받았으니 날짜 잡으란다. 당신이 며느리에게 맛있는 저녁 사신다고. 몸보신하자고. 장어 사 먹자고.

이런 따뜻한 글이 많이 보인다. 나이드신 분들의 안경 맞춤과 치아 손질, 아이들 학원비, 어린 자식들을 치과로 데리고 가서 이를 손질해 준 택시 운전수 아저씨, 가족들과 원없이 먹으려고 산 소고기가 놓여 있던진열대와, 자전거를 담았던 빈 상자가 골목에 가득히 놓여 있는 것을 사진으로 올린 사람들. 누군가 넉넉한 인심 속에서 의도대로 흐른 경제가 보인다.’는 글도 올려놓았다.

온 세상을 휘젓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몇 개월째 고통스럽다. 불안하다. 그러나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인내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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