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문학상-노성애] 황석어 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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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문학상-노성애] 황석어 ⑦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6.0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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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남도 작가상
"고소헌 기름이 자르르 흐를 것이구만이라."

[목포시민신문]

이난영 가수의 목포는 항구다라는 노래가 두 사람의 가슴을 적시기 시작한다. 그때서야 경숙이 후유증을 어렵사리 이겨낸다. 노래 1절은 이미 흘러가고, 2절이 시작되고 있을 무렵이다.

 

유달산 잔디 위에 놀던 옛날도

동백꽃 쓸어 앉고 울던 옛날도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추억의 고향

 

경숙의 눈동자가 불그스름하게 변해가더니 급기야 눈시울에 이슬이 맺힌다. 운전대를 한 손을 토닥거리며 장단을 맞추고 있던 경숙의 남편이 흘깃 바라보더니 음악을 도로 집어넣는다.

그냥 둬요. 다시 한 번 들어요. 아니, 끝없이 반복해서 들려줘요.”

그래도 괜찮겠어?”

희미한 옛일인 걸요, . 이젠 모든 걸 가슴 속에 꼭꼭 묻어버리고 싶어요.”

망각이라는 단어를 내세워서 쉽게 묻어버리면 안 되고, 기억의 역사로 생생하게 되살려야 한다잖아.”

너무나 아픈 걸 어떡해요.”

그래도 잊을 걸 잊어야지.”

경숙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눈앞에 펼쳐지는 목포 시가지를 바라본다. 동백꽃은 제철이 아니라서 볼 수 없지만, 그 옛날과 하나도 다름없는 유달산이 그윽한 눈빛으로 시가지와 앞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항구가 보인다. 역시 목포는 항구다. 가장 항구다운 도시가 목포라고 해도 과언을 아닐 듯싶다.

뻘낙지 사자고 했었지. 사서 가져가기만 하지 말고, 여긴 온 김에 싱싱한 세발낙지 실컷 먹고 가자고.”

그건 안 살래요.”

승용차가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경숙이 먼저 내려서 수산물시장 안으로 들어간다. 남편이 서둘러 따라와서 경숙의 눈치를 연신 살핀다. 갑자기 마음이 변한 이유를 찾아내고 싶은 모양이다.

싱싱한 해산물에서 바다 향이 물씬 풍긴다.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는 이런 수산물 때문일 것이다. 바닷물이 에메랄드처럼 푸르고, 철썩대며 포말을 일으키고, 저녁이면 까치놀이 드리워지는 것 등등 모두가 이 애들의 재능이요 조화일 테다. 경숙은 실내에 도열된 갖가지 수산물들을 애정의 눈빛으로 쓰다듬어준다.

소가 더위 먹고 주저앉았을 때 뻘낙지 한 마리 먹이면 벌떡 일어선대.”

남편의 거듭된 뻘낙지타령에도 경숙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저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며 뭔가를 찾을 뿐이다. 그러다가 눈을 번쩍 뜨고, 남편을 잡아끌며 한 가게 쪽으로 다가간다. 그 가게가 훤하다. 금싸라기 빛살로 인해 귀티를 품은 채 소담스럽게 쌓여있는 것들이 보인다. 황석어이다. 경숙이 그 애들 앞에 냉큼 쪼그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누런 뱃살을 툭, 하고 찔러본다. 그 옛날처럼…….

지금이 제철이지라. 고소헌 기름이 자르르 흐를 것이구만이라.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오는 것은 말헐 것도 없고, 죽은 사람도 벌떡 일어서게 만든단께라.”

경숙이 흥정하지 않고 황석어를 덥석 산다. 남편은 상점 주인이 모르게 경숙의 옆구리를 슬며시 찔러댄다. 흥정한 뒤에 사야 된다는 뜻일 것이다. 경숙은 모른 체하며, 그날로 다시 빠져들어 간다.

다음호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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