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감독의 이주의 영화소개] 난 너와 함께라면 최고로 행복해 " 환상의 마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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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독의 이주의 영화소개] 난 너와 함께라면 최고로 행복해 " 환상의 마로나 "
  • 류용철
  • 승인 2020.06.10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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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우리는 거리를 걷다 보면 수많은 떠돌이 개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유기견 보호소의 주눅든 강아지들이 어떤 시련과 고난을 거쳐 이곳까지 오게 됐는지 인간은 알 방도가 없다. 인간에게 버림받고 상처받았음에도, 강아지들은 아주 약간의 관심만으로도 다시 한번 인간을 믿고 의지한다. 이토록 착한 생명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환상의 마로나는 이 세상 모든 유기견들을 대변하는 한 마리의 강아지이다. 마로나의 삶을 뛰어난 상상력과 시각효과로 완성시킨 아름다운 수작이다. 아홉에서 이마로, 이마에서 사라로, 또 마로나로. 네 개의 이름을 거치며 충만한 행복과 외로움 사이를 배회한 강아지의 일대기가 관객들의 눈가와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다.

 

마로나는 귀족 혈통에 잡종을 차별하는 아빠와, 아빠를 홀딱 반하게 할 만큼 아름다운 잡종견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사랑과 뼈다귀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엄마의 철학과 어우러지는 범견종적인 탄생이었다. 아홉 마리 중 막내로 태어난 마로나는 당시만 해도 아홉으로 불렸다. 이후 엄마와 형제들을 떠나 아빠를 키우는 인간에게 맡겨졌지만, 금방 내보내졌다. 아홉 마리 중 막내로 태어났으니 행복도 뼈다귀도 1/9 어치의 몫뿐일 거라며 자조하는 마로나. 길거리를 전전하며 쓰레기통에서 잠을 자던 어느 날, 운명처럼 자신의 첫 번째 인간을 만난다. 실력 있는 곡예사 마놀이다.

 

마놀은 마로나에게 아나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일터에서나 집에서나 항상 마로나와 붙어 지낸다. 안락한 잠자리에 맛있는 뼈다귀, 그리고 자신만의 인간까지. 갑자기 많은 선물 갖게 된 마로나는 이 모든 걸 언젠가 잃게 될까봐 두려워져, 최선을 다해 마놀을 기쁘게 해준다. 그러던 어느 날 마로나는 마놀이 자신으로 인해 무척이나 슬퍼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순간이 마놀과 이별해야 할 때임을 깨닫는다. 그렇게 마로나는 마지막으로 마놀의 얼굴을 열심히 핥은 뒤 정든 집을 떠나 다시 길거리로 나선다.

 

환상의 마로나는 마로나가 마놀, 건설업자 이스트반, 귀여운 소녀 솔랑쥬까지 세 명의 인간을 만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강아지의 개똥철학과 냉소적인 조크가 섞인 나긋나긋한 내레이션은 독특한 분위기로 극을 이끈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인간의 말을 배운 영리한 강아지가 인간의 생각과 마음은 물론 세상을 읽는다는 신선한 설정이 흡입력 있게 관객을 끌어당긴다. 늘 오줌과 똥을 참아야 하지만, 자고 있는 인간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개의 삶에 가치가 있음을 피력하는 마로나의 내레이션 등이 관객들에게 소소한 웃음을 선사한다.

 

마로나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구조는 강아지의 불안한 견생을 더욱 극대화한다. 강아지에게 닥칠 수 있는 가장 최대의 비극은 바로 인간의 내면 변화다. 영화는 후각이 유독 발달된 강아지가 냄새로 먼저 인간의 기분과 미래를 감지한다는 독특한 추측을 가미했다. 그들이 자신에게 소홀해지려는 조짐을 인간보다 먼저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마로나는 점점 맡게 되는 냄새도, 아는 것도 많아지지만 감정이 무뎌지기도 한다. 여러 번의 버려짐 끝에 찾아온 새로운 행복에도 도통 감정의 갈피를 못 잡는 마로나의 모습은 관객들의 마음을 무너트리기 충분하다. 한 순간도 안심해본 적 없는 마로나의 위태로운 견생은 영화 제목과는 모순적이게도 환상과 동떨어져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을 향한 마로나의 따뜻한 사랑과 희생은 아름답고 거룩하다.

 

거리의 한 유기견을 구해 임시보호를 해본 적 있는 안카 다미안 감독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유럽 그래픽 노블을 대표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브레흐트 에번스의 강렬하면서도 독창적인 그림체로 표현하며 한 편의 예술영화를 탄생시켰다. 평범하면서도 음울한 이야기는 2D, 3D, 컷아웃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기법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더욱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로 변모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색깔과 모양들로 변형되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캐릭터 및 배경 디자인은 피카소, 마티스, 라울 뒤피, 오토 딕스, 게오르게 그로스와 같은 세계적인 화가들의 다양한 그림체를 연상시킨다. 관점을 달리하면 마치 어린아이가 상상력을 발휘해 스케치북에 낙서를 해놓은 것 같기도 해 색다른 즐거움을 안긴다. 특히 마로나의 인간, 즉 견주가 바뀔 때마다 그들의 내면에 따라 거침없이 선과 색채가 바뀌는 그림체들이 신선한 미적 경험을 선사한다.

 

행복과 위기를 넘나드는 마로나의 여정을 장난스러운 리듬과 멜로디로 표현한 파블로 피코의 영화음악 역시 귓가를 사로잡는다. 영화는 지난해 제21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대상과 관객상을 휩쓸며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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