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읽기-윤소희 작가] 목포에 사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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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읽기-윤소희 작가] 목포에 사는 즐거움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6.1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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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희 (작가‧ ‘동네산책’ 책방지기)

 

[목포시민신문]

목포에 와서 책방을 시작한 지 딱 1년이 되었다.

목포도 처음이고 책방 운영도 처음이라 숨 쉬는 것 조차 낯설기만 하다. 그게 좋다. 우리의 삶은 본능적으로 익숙하고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게 되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흥분이 마음 한 켠에 늘 도사리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어느덧 안부를 묻는 지인들도 많이 생겼다. 때로 그들은 이제 목포에 좀 적응이 되었느냐고 인사를 건넨다. 그냥 가볍게 지나치는 인삿말이기에 그렇다는 짧은 대답으로 끝날 때가 더 많지만 사실 나로서는 주저리주저리 할 말이 많아진다. 왜냐하면 적응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적응한다는 것은 익숙해진다는 것이고, 익숙해지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생기는 것은 자명하다.

목포 어느 곳에 있든 5분이면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다는 사실은 나를 흥분시킨다. 매일 아침, 마음만 먹으면 바닷바람을 쐬며 산책을 할 수 있다니. 점심을 먹고 바닷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다니. 일부러 맑은 날을 골라 엄두를 내지 않아도 노을이 번지는 바다를 보며 회 한 접시에 소주를 홀짝일 수 있다니. 내게 이런 호사는 온갖 잡다한 일상을 정리정돈하며 가까스로 마련한 며칠을 송두리째 갈아넣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호사가 익숙한 일상이 되어 무감해질까봐 노심초사할 지경이다. 어느날 오후에는 점심을 먹고 잠시 평화광장 데크 계단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데, 그 순간이 너무 당연해서 흠칫 놀란 적도 있다.

책방이 쉬는 날이면 홀로 조용히 목포를 잠시 떠난다. 거창하게 남도 여행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으나 목포 주변의 다른 지역으로 가는 일은 또 다른 설렘으로 가득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남도길은 어디를 가나 일년 내내 꽃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동백의 유명세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일부러 꽃놀이를 자처하지 않아도 저절로 맞닥뜨리는 벚꽃길, 먼나무길, 배롱나무길은 안전 운전을 여러 번 위협했다. 올 봄에는 가는 길마다 환하게 흐드러진 유채꽃 때문에 가슴앓이를 해야 할 정도였는데, 지난 주에는 금계국이 사방천지에 있는대로 샛노랗게 번져 저절로 꺅꺅 비명을 질러댔다.

네비게이션의 길안내도 없이 해남이며, 장흥, 보성 등지로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차를 달려 되는대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천천히 달리다보면 흐드러진 꽃길이, 연초록 진초록 어우러진 무성한 숲길이, 윤슬 찬란하게 빛나는 강과 호수와 바다가, 그 숨막히게 아름다운 절경들이 무심한 듯 아늑하고 정겨워 눈물겹다. 뒤늦게 정신 차리고 여기가 어디인가 지도를 찾아 내가 있는 곳의 좌표를 알아보기도 한다. 유명짜한 관광지는 당연히 아닐 뿐더러 이름도 낯선 무슨 읍이나 면의 주소가 나온다.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또 와야지, 봄에 또 와야지, 가을에 또 와야지, 하지만 다음에는 또 다른 낯선 길에 끌려 매번 다른 풍경과 만나게 된다.

서울에서 남도 여행을 하려면 며칠동안 밀릴 업무를 꼼꼼히 체크해 처리하고, 고양이며 화분이며 집안 단속을 단단히 해두고 비장하게 와야 했다. 그러고도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가야할 곳을 미리 정하고 놓치지 않으려 부지런히 다녀야 했다. 아무데나 차를 세워두고 한없이 우두망찰할 호사 따위는 동네 사람의 몫이었다. 동네 사람! 다음에 또 언제 오려나 아쉬운 발길을 돌리며 늘 부러웠던 그 동네 사람. 언젠가부터 장래희망이 동네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달 살기를 그래서 하고 싶었고, 어디로 여행을 가나 한 달 살기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목포에 살면, 옆 동네 마실 가듯 저절로 남도 여행을 하고 섬 투어도 가볍게 할 수 있으리라는 약삭 빠른 기대가 없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나 반나절을 보내고 돌아오는 목포는 다시 새롭다. 대도시구나, 하는 자각이 문득 밀려든다. 내 무의식 속의 목포는 아직도 서울에서 막 당도한 곳이기에 사람도 없고 차도 없는 한가한 작은 도시이다. 소도시. 나는 그 말을 참 좋아했다. 그러나 쉬는 날 옆 동네 마실을 마치고 들어서는 목포는 건물도 높고 차도 많고 사람도 많고 네온사인 화려한 대도시였다. 도시의 불빛은 또 왜 반가운건지. 속수무책이다. 이래저래 익숙해지지 않는다. 다행이다. 아직 낯설어서, 아직 적응이 안 되서, 정말이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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