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읽기-조준 동신대교수] 당연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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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읽기-조준 동신대교수] 당연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6.1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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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신문]

조준/동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교수
조준/동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교수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교훈 중 하나는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늘 반복해왔던 일상들, 아침에 일어나고 밥 먹고, 학교에 가고 직장에 가는 그 지루한 일상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그것을 분명하게 경험하고 있다.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그 일상이 지금은 너무 너무 그립고, 그래서 우울하다. 그런데 그 우울한 나날을 더 우울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지난 1일 충남 천안에서 9살 어린이가 심정지 상태로 여행가방 안에서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보호자가 아이를 벌주기 위해 7시간 넘게 여행가방에 감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갇힌 아이가 가방 안에서 용변을 보자 친부의 동거녀는 더 작은 가방으로 아이를 옮겨 방치했고 3시간 동안 외출까지 했다고 한다. 캄캄하고 숨막히는 가방 안에서 긴 시간 아이가 느꼈을 두려움과 고통이 어땠을지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경남 창녕에서는 부모로부터 학대 받은 아이가 편의점에서 발견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계부와 친모로부터 가혹한 학대를 당한 아이는 불에 달궈진 쇠젓가락으로 발바닥을 지지는 학대를 당하는 등 참담한 추가 피해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아이의 친모는 글루건과 불에 달궈진 쇠젓가락을 이용해 발등과 발바닥을 지졌고, 계부와 친모는 물이 담긴 욕조에 가둬 숨을 못 쉬게 한 사실도 드러났다. 학대 피해 아동은 혼자서 다락방에 살았다고 진술해 집 안에서도 철저하게 감금된 것으로 밝혀졌다.

더 큰 문제는 이처럼 사망까지 이르기도 하는 심각한 아동 학대가 반복해 발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학대받은 아이들 대부분이 학대가 벌어진 가정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아동복지법이 원가족 보호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는 데 있다. 원가족 보호 원칙은 원래 빈곤으로 인한 가족 해체를 막고 한부모 가정 등의 양육을 지원하기 위해 2016년 아동복지법이 개정되면서 명문화된 것이다. 그런데 가족으로의 복귀가 우선시되면서 분리가 필요한 학대 아동들까지 집에 보내진 채 모니터링과 부모 교육 등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재학대가 반복된다. 이제 우리는 부모는 아이들의 가장 안전한 보호자라는 그 당연한 생각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아동 학대 방지를 위한 충분한 대책이 없는 원가족 보호 원칙은 아이가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전근대적 인식을 강화할 뿐이다. 그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일 뿐인 부모는 아이에게 보호자가 될 수 없다. 모든 부모는 자식을 위해 헌신할 것이라는 그 당연한 생각이 우리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얼마 전 가족치료수업과 관련해 강의자료를 찾던 중 우연히 보게 된 케빈에 대하여라는 영화의 줄거리가 지금도 마음에 남는다. 자유롭게 여행을 하며 살고 있던 에바는 한 남자를 사랑했고 조심하지 않은 결과, 임신을 한다. 여기까지는 평범했다. 어쩌면 축복일 수도 있었다. 사랑하는 남녀가 자신들을 닮은 한 아이의 부모가 된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에바는 달랐다. 에바는 임신한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낳을 아이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를 키워야 할 자신의 미래가 까마득했다. 출산 또한 에바를 달라지게 할 수 없었다. 에바에게 케빈은 고통의 댓가이자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존재일 뿐이었다. 에바는 심지어 케빈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가 태어나기 전이 훨씬 행복했어. 알지?“

영화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에바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이해하려는 사람도 있다. 하여튼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그리고 나는 그 당연하다는 말이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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