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문학상-노성애] 황석어 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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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문학상-노성애] 황석어 ⑨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6.1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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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남도작가상
황석어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며

[목포시민신문]

큰오빠는 역시 다른 건 거들떠보지도 않고 황석어찌개에만 매달렸다. 콧등에 땀방울이 여드름처럼 송송 돋아나도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뼈째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국물을 게걸스럽게 마시고 트림을 하더니 거참, 겁나게 시원허다잉하고 불룩 솟구친 배를 두드렸다.

어머니는 자취방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나자, 오빠들을 집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우린 고등학생들인데, 설마 무슨 해코지를 당할라고요. 그들은 적군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군들이란 말예요. 염려 말고 돌아가세요.”

큰오빠가 도리머리를 하며, 집으로 돌아가야 할 어머니와 경숙을 외려 걱정했다. 결국, 어머니는 큰오빠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경숙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이 지난 후 어스름이 내릴 무렵이었다. 구장네 영아 언니가 찾아와서 시외전화를 받아보라고 했다. 어머니는 고무신도 제대로 꿰신지 못하고 헐레벌떡 뛰어갔다. 경숙이 뒤따라갔다. 작은 오빠의 전화였다. 혼자 도서관에 갔던 큰오빠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거였다. 어머니의 손에 들려있던 전화기가 툇마루 위로 떨어졌다. 어머니는 구장네 토방에서 벼락 맞은 고목처럼 쓰러졌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한 해, 두 해.

큰오빠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끼니때마다 큰오빠의 밥을 담아 아랫목 요단 속에 묻었다. 아카시아 꽃이 피면 꼬들꼬들 반 건조된 황석어찌개를 부뚜막에 올려놓고 조앙신에게 빌었다. 큰오빠가 돌아오는 길에서 헤매고 있다면 자상히 가르쳐달라며 손금이 지워질 만큼 빌고 또 빌었다. 해거름 녘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문밖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큰오빠를 기다렸다. 마을사람들은 어머니의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속닥이곤 했다. 아버지는 그만 포기하고 큰오빠의 가묘라도 만들어주자고 했다. 어머니가 펄쩍 뛰었다. 돌아오지 않는 자식을 포기하는 부모가 이 세상 어디에 있느냐고 고래고래 외치며 입에 게거품을 물었다.

또 꽃이 피고,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리기를 거듭했다. 속절없는 세월이 흘러만 갔다. 어머니는 빼빼 말라서, 건들바람에도 마른 풀잎처럼 날려 가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가 황석어 철이 되어 배가 들어오는 어느 봄날, 어머니가 양동이를 이고 포구로 나갔다가 돌아왔다. 그 양동이에는 황석어가 한 가득이었다.

경철이 아부지, 내가 잘못 생각혔소. 우리 경철이 가묘라도 만들어줍시다. 넋이라도 편히 쉬도록 혀줘야지라.”

지난밤, 어머니의 꿈속에서 큰오빠가 나타났다고 했다. 신발도 신지 못하고, 헤진 옷을 입은 채 떠돌아다닌다고 말하더라는 거였다.

다음날 마을 뒷산에 가묘가 만들어졌다. 그 무덤 앞에는 어머니가 눈물을 섞어 만든 황석어찌개를 올렸다. 예로부터 제사음식에는 고춧가루를 넣지 않지만, 큰오빠가 워낙 좋아했던 거라서 제사상 한가운데 떠억 놓았다.

어머니가 찌개를 끓이기 전에 황석어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며 눈물 흘리는 것을 경숙은 보았다.

다음호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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