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추천 이주의 책] 어지럽고 고단할 때는 그림 놀이 '마음은 파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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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 추천 이주의 책] 어지럽고 고단할 때는 그림 놀이 '마음은 파도친다'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7.23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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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미 지음
도서출판 가지
2020년 2월 10일 발행

[목포시민신문]

요 며칠 머리가 몹시 복잡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마음도 어수선했다. 이게 다 뉴스 때문이다 원망하며 책을 읽는데 집중했다. 좀처럼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마음 다잡으며 읽고 있었다. 그 와중에 SNS에 접속했다가 읽던 책을 던져 버렸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태도, 그러니까 표절이라든가 도용이라든가 하는 문제로 시끄러웠고, 하필이면 내가 마침 읽고 있던 책은 논란이 된 작가와 연관있는 다른 책이었다. 글을 쓴다는 일에 오만정이 다 떨어지며 마음이 거칠게 파도쳤다. 그래서 집어들었을까.

유현미 작가의 마음은 파도친다를 읽으며 비로소 마음을 가라 앉혔다. 나는 거친 파도에 시달리고 있는 기분이었기에, 작가는 이럴 때 어떻게 마음을 달랬을까, 드로잉을 하는 사람 답게 그림으로 달랬을까, 생각하며 책을 넘기기 시작했다. 웬걸! 유 작가는 파도타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같은 마음 다른 파도. 미술을 전공했거나 특출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기에 작가에게 드로잉은 얼마든지 놀이가 될 수 있었다. 잘 그려야 한다는 욕심도 없고, 어떤 식으로든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강박도 없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작가는 그

저 펜 하나 들고 끼적끼적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었다. 드로잉북이면서 그림일기가 되고, 시화집도 되었다가, 일러스트를 곁들인 에세이집이기도 한 이 책의 모양새가 자유롭다.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작가는 미술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인생을 살다가 미술치료를 계기로 우연히 드로잉을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은 그림책을 여러 권 출간한 그림책 작가가 되었다. 작가에게는 처음부터 그림이 놀이였기에 이 책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그저 낙서놀음 같은 헐렁함을 준다.

어려운 그림이 한 컷도 없다. 어려운 문장도 한 줄 없다. 오직 작가가 슬며시 가 닿았던 마음, 그 시선의 흔적만이 몇 마디 문장으로, 힘 쪼옥 빼버린 선으로 구불거릴 뿐이었다. 그 쓸데없음이, 그 무용함이 아름다워 어떤 페이지에서는 한참을 머물렀다. 마음이 사나워져서 마구 그어버린 선에서도 발랄함을 놓치지 않고 이렇게 적는다.

의식하고 그린 것이 아닌데 어지럽고 고단한 내 마음이 그대로 담겼다. 어지럽고 고단한데 그림은 즐겁게 그렸다.

아이들이 바람개비처럼 활달하게 뛰노는 느낌도 난다. 역시 그림이라는 놀이에는 어떤 묘약같은 구석이 있다. 내 마음은 파도친다.”

동네산책 책방지기/윤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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