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문학상-김정예] 아버지의 갓바위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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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문학상-김정예] 아버지의 갓바위 ①
  • 목포시민신문
  • 승인 2020.07.2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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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본상

망망대해 떠도는 유리병처럼

[목포시민신문] 

'아쉽게도 이번 채용에는 함께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5번째 공채에 떨어졌다. 작은 책에만 눈과 코를 박아 놓고 숨도 죄스럽게 쉬며 공부했는데 또 낙방했다. 차라리 공무원 시험이었다면 툭툭 털고 등을 돌렸을 테지만 기업 공채마다 번번이 돌아가며 떨어지니 어느 곳에서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좌절감이 일상을 집어삼켰다. 누군가 실수로 흘려보낸 유리병처럼 좌표도 부표도 없이 망망대해를 떠도는 기분이었다.

내게는 '장녀'라는 짐이 있었다. 빨리 가족을 부양해야한다는 압박감이 닻이 돼 나의 마음을 우울한 기저로 끌어내렸다. 아버지를 볼 때마다 죄송한 마음이 들어 피하기만 했다. 밥도, 대화도, 가끔 함께 나가던 낚시도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비 맞은 쥐가 벌벌 떨며 하수구로 도망가듯 처량히 가족을 피해 다니던 어느 날, 아버지는 대뜸 바위를 보러가자고 했다. 별 일 없으면 아무 말 않고 가자며 차에 시동을 거셨다. 머리가 아프다고 해볼까 친구랑 약속 있다고 해볼까. 하지만 적당한 명분이 생각나지 않아 아버지를 따라 나서기로 했다. 언제까지 가족을 피해 다닐 수도 없거니와 속도 갑갑하던 찰나에 드라이브겸 기분이나 풀자는 생각이 웬일로 들었다.

 "나도 결혼하고 일이 잘 안될 때 할아버지가 자주 데려갔던 곳이야."

 할아버지는 목포사람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기억 조각은 단편적이지만 분명한 이미지가 있었다. 소금에 잔뜩 절여진 고추장아찌를 이 없는 잇몸으로 잘게 으깨먹으면서도 꼭 식후에 담배를 찾던 분이었다. 뱃사람에게는 파도처럼 괄괄한 피가 흘러서 그렇다더라. 그래서 소금을 먹고 담배향을 맡지 않으면 안 된다며 늘 농담을 던지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내뿜는 매캐한 담배향과 그리운 소금내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신의 역사와 향기가 자식에게도 옮아가면 어쩌냐며 걱정하셨지만 다행히도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달리 정적인 사람이었다. 쉬이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없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그리워질 때마다 목포를 찾았다. 목포항 초입에서부터 느껴지는 짭조름한 바다향은 공기에 술을 탄 것처럼 아버지의 취기를 오르게 했다. 술을 마시면 이상하게 눈물이 많아지는 아버지는 항구에만 다가서면 마치 주사를 부리듯이 눈시울을 붉혔다.

다음호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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